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호 Mar 09. 2018

친구 1

잊고싶은 이야기와 잊어버린 친구들 1


지금 아주 친하게 지내고 또 오랜동안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처럼 하늘이 유난히 코발트 빛을 띤 날, 뒤뜰에 하나씩 떨어져 흩어진 반쯤 붉은 대추를 보면 생각하지도 않게 잊어버린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아주 친하지도, 깊지도 또 가슴에 남지도 않았던 친구들. 그리고 때로는 내가 그들에게 못된 짓을 한 친구들.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한 것이다.

이야기 하나


언제부터인가 내 손등에는 아주 작고 거무티티한 사마귀가 몇개씩 나타나고 있다. 이 친구는 내 손등의 사마귀를 보면 생각나는 친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짝꿍이었다. 그는 엄지 손가락 바깥쪽에 연필심만한 사마귀를 하나 대롱대롱 달고 다녔다. 나는 그것이 늘 이유없이 눈에 거슬렸다. 꼭 언젠가는 그것을 떼어주고 싶었고.  살처럼 부드럽지도 않고 늘 뭔가 이상해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에게 늘 그랬다. 그거 잘라내면 아주 깨끗한 손가락이 될 수 있다고.

어느 하늘 푸른 날 나는 그 친구에게 그걸 없애주겠노라고 했다. 아프지 않으니 좀 참아보라며. 약간은 겁먹은 얼굴. 하지만 고개를 끄덕인 친구는 조막만한 손을 내밀었다. 아마도 엄지손가락이 깔끔해진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간 듯 했다.  겁도 없이 나는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나는 연필을 깎는 반짝거리는 칼을 꺼냈다.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는 칼날은 유난히 빛을 발한다. 그리고는  사마귀를 얼른 베어내 주었다. 순간적으로 베어내서 아프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몇초가 흘렀을까. 이내 사마귀를 잘라낸 자리에서 장미꽃보다 붉은 피가 하얀 공책 위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그것을 보고는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눈보다 하얀 공책에 떨어지는 붉디붉은 무늬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도 "아 ! 이것은 뭐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때렸다.


수업중이던 선생님은 깜짝 놀라 달려왔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친구를 보고 깜짝 놀란 그 모습. 잊을 수가 없다. 친구는 바로 양호실로 갔고,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날 쳐다보신다. 그날 나의 신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안해도 될 것 같다. 혼날 만큼 충분히 혼났으니까. 이후 선생님은 짝꿍을 바꾸어 주셨다.  그리고 그 친구는 더 이상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 친구가 되고 만다.



이야기 둘


바뀐 짝꿍은 우리집 앞집에 사는 과일가게 주인 아주머니 맏딸이다. 그 아주머니는 순박하고 누구에게나 정이 많으신 분이다. 특히 나를 늘 예쁘게 봐주셨던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다기 보다 어쩌면 아무런 이유없이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어린 마음에 괜히 싫은 것이다.  그리고 학년이 거의 끝날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못 됐고 그 친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너무나 바보처럼 순했다.

 나는 책상 가운데 굵은 선을 그었다. 서로 절대 넘어오지 말자고 했다. 그 선을 넘으면 넘는 만큼 책을 잘라낸다고 했다. 나는 늘 그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친구 책은 종종 선을 넘어왔다. 그때마다 펼쳐놓은 그의 책 페이지는 거의 반쯤 잘려 나간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섬득한 못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 것이다.


겨울방학. 하늘이 시리도록 파랗던 어느 날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그 친구를 데리고 하얗게 눈이 쌓인 우리집 콘크리트 마당을 천천히 걸어 들어 오고  있었다. 모친을 찾아왔다. 추위에 발갛게 오그라든 그 친구 손에는 교과서 두어권이 들려져 있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자초지종을 듣고 또 그 책을 보신 모친은 소스라치게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리셨다. 모친은 나의 책과 몇 페이지가 잘려나간 그의 책을 바꿔주라고 하셨다. 마지못해 책을 바꿔 주었다. 그날 나는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았다. 모친도 많이 우신 듯 했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자마자 짝꿍은 또 바뀌었다. 바뀐 이유는 굳이 말 안해도 될 것 같다.  이십여년 전에 들은 소문으로는 그 친구가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다고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경의 느린 구름 아래에서 10(마지막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