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면 가끔 누이를 만났다. 하지만 교복 입은 학생들이 갈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강바람 부는 금강 변을 산책하거나 옥녀봉에 올라 멀리 물길을 바라보는 정도이다. 그나마 노루오줌이 멋쩍게 널려있는 금강 언저리에는 가볼 만한 곳이 더러 몇 군데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다.
잡다한 식당과 문뱃내 흩어지는 소란스러운 선술집들이 즐비한 강경 포구를 지난다. 그 강둑을 따라 남쪽으로 몇 백 미터를 가면 만나는 임리정(臨履亭)이라는 곳. 이곳은 조선시대 예치의 최고 이론가로 추앙받는 사계 김장생 할아버지가 1626년 인조 4년 지은 건물이다. 임리정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시경에 나온 글에서 따왔다.
"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한 것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라"
(如臨深淵 如履薄氷)
는 구절인데 이는 자신의 처신과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이다. 이런 곳에 누이 하고 오면 아무도 이상하게 보거나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다. 당시에는 그같이 고리타분한 정자나 고택에 가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현장 답사를 온 듯 보였다. 말하자면 허허실실이다. 서노는 언덕을 오를 때 가끔 누이의 손을 잡아볼 수도 있다. 누이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사리지도 않는다. 그럴 때면 서노가 오히려 서투른 도둑놈처럼 가슴이 풋풋하게 두근거린다.
금강 변에서 또 가볼 만한 곳은 미내다리(渼奈橋)이다. 미내다리는 금강 하류로 흐르는 지천의 하나인 미내천에 놓인 다리이다. 본래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다리였으나 조선 영조시대에 발생한 대홍수 때 유실되었다. 그래서 영조 7년인 1731년에 강경에 살던 석 설산, 송만윤 그리고 황산에 살던 유 부업, 여산의 강명달, 강 지평이 자금을 대서 무지개 모양으로 돌을 쌓아 반달형의 아름다운 홍예교를 만들었다. 지금은 워낙 엄청난 대교들이 많아 옹색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삼남에서 제일가는 대교였다고 한다.
이곳에 오면 강바람에 누이의 단발머리가 자주 흩날린다. 훤히 드러나는 하얀 목덜미는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목덜미가 마냥 희었다”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서노가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또 목부터 가슴까지 이어지는 교복의 목달개는 누이의 웃음을 더 하얗게 만든다. 그 하얀 웃음은 오월에 다가온 수수꽃다리의 향기이고, 유월의 한 줌 수국이다. 그리고 가끔 손짓을 하며 이야기할 때 발쪽해진 교복선 너머 뽀얀 피부는 햇빛에 반사되는 눈부심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서노에게는 마음이 더 눈부셨는지도 모른다.
누이와 다닐 때 서노는 주로 삼촌의 책 이야기를 많이 했다. 노자의 도가 어쩌고저쩌고 쌩구라를 막 풀거나,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삼촌 방에서 빌려 읽었는데, 그것은 우짜고 저짜고 라는 등 엄청난 약을 팔았다. 또 헤겔이나 칸트 같은 책은 너무 어려워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이었다. 알맹이는 읽지도 않고 제목과 간단한 소개서만 보고는, 둘러대고 주워 끼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한 터라 지어내서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헤겔은 가끔 서노 때문에 개똥 철학자가 되기도 하고, 칸트는 순수 이성을 개념 없이 상실한 이론가가 되기도 한다. 누이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개구라를 듣고 놀라기도 하고 또 대견해하기도 했다.
서노의 레퍼토리에 있어서 삼촌의 책은 엄청난 자산이자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였다. 하지만 시간은 서노의 편이 아니었다. 해는 어둠이라는 자객의 칼을 맞고 선혈이 낭자해져서 서산으로 쓰러져간다. 그것은 산수국 한 줌 너머로 지는 노을. 그리고 그 붉은 노을마저 긴 바지랑대가 남긴 가늣한 그림자를 거두고 사라진다. 둘은 그제야 부랴부랴 귀가를 서두른다.
중학교 3학년인 서노는 고등학교 진학 문제가 코앞에 닥쳤다. 충청남도에서는 대부분 대전에 있는 대전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한다. 서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강경에서 손자가 고등학교를 다녔으면 하고 바랐다. 강경에는 강경상업고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슬하에 두고 싶었던 것이다.
강경상고는 전국에서 3대 상업고등학교 중의 하나로 꽤나 유명한 학교다. 하지만 서노는 상고에 진학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상고를 졸업하면 누구나 다 은행원이 되거나 회사 경리가 되는 줄 알았다. 주판알을 튕기는 자신의 모습, 돈을 세고 있는 자신의 모습, 이런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괴롭고 혐오스러웠다.
이 문제로 늘 고민을 해오던 서노는 드디어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중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돌아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방을 정리했다. 모든 책과 잡다한 소지품을 두엄자리로 가져가서 모두 불에 태웠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 속에 기억의 단층들이 타오르고, 차가운 겨울바람은 기억의 연기를 끌고 올라가 남은 기억마저 천천히 지워 버린다. 서노는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도 다 못하고 사는 세상에 하기 싫은 것을 하며 어떻게 사느냐고.
서노는 작은 가방에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이제 무작정 대책 없이 떠나고 싶은 것이다. 상고를 가느니 고등학교를 차라리 다니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노는 누이를 불러냈다. 갑자기 불려 나온 누이는 밥그릇 뺏긴 강아지 모양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고, 서노는 마치 만주로 독립운동이나 하러 가는 듯한 심각한 상통을 짓고 있었다. 둘은 자주 거닐었던 강둑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날이 저물자 땅거미는 둘의 그림자를 흐리게 덮어주고, 시린 강바람은 둘의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파고들 살품을 기웃거린다.
서노는 갑자기 돌아섰다. 서노의 왼손은 누이의 외딴 허리를 나직이 감아 돌고, 오른손은 가녀린 어깨너머 얹었다. 순간 서노의 볼과 누이의 볼이 스쳤다. 서노는 그것이 그렇게 부드럽고 달콤할 줄 몰랐고, 또 그 기억이 평생 가는 기억이 될 줄 미처 몰랐다. 누이의 좁은 어깨와 수줍은 얼굴은 서노의 저린 가슴속으로 파묻힌다.
차가워진 누이의 다목다리는 종아리에 다가와 닿는다. 살며시 느껴지는 누이의 떨림. 서노는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처가 없는데도 가슴이 아프고, 가슴이 아프지만 그대로가 좋았다. 서노는 누이에게 말했다.
“내일 나 서울 갈 거야. 이제 언제 볼지 모르겠어”
밤은 별을 타고 가고, 별은 시간을 타고 간다. 매서운 아침 공기가 머무는 쪽빛 하늘은 가슴 시리다. 이내 기차 경적 소리가 강경역의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서울로 가는 무궁화 열차의 바퀴가 아무런 대책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노가 쓰던 방 책상 위에는 할머니에게 써놓은 편지 한 장만 덩그마니 놓여 천정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후 서노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이런 글을 썼다.
<미내다리 건너기 못내 서러워/ 김선호>
군산 떠나온 바람 황산에서 쉴 때
강경역 앞 전당포
시계 주인 돈 꾸어 주섬주섬 떠나고
금고에 든 시계 잠든다
돈 벌면 대처로 간다는
어른들 이야기 귀에 딱지 앉아
젊은 사람 떠나고
붉은 벽돌집 화석으로 남는다
과거와 현재가 멈춰버린 곳
금강도 흐르다 옥녀봉 앞에 멈추고
미내다리 건너기 못내 서러워
반달 돌 무지개 세 개 서있다
강에서 잡히는 돼지*는 흔적일 뿐
한 날의 영화 소솜에 지나
사람은 희붐한 새벽안개가 된다
시간은 땅거미 진 소롯길 저 홀로 가고
* 강돼지 : 황복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