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싶은 이야기와 잊어버린 친구들 2
이야기 셋
봄은 아이나 어른이나 설레는 계절이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는 의미를 부여해서도 그렇고 계절도 새로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해 겨울이 끝나고 봄이 눈을 내밀 때 2학년이 되었다. 반 배정을 받고 교실을 옮겨가는 중에 담임선생님이 따로 남으라신다. 별로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 듯 한데.
갑이 남으라면 을은 군소리 말고 남아야 한다.
다들 떠나고 텅 빈 교실에는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졌다. 가끔씩 봄바람이 창을 살랑살랑 두드린다. 몸집이 꽤나 크신 선생님이 당신의 책상에 앉아 계셨고 나는 그녀의 눈만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서랍을 열고는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챙겨서 다가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2학년 되었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는 어깨를 토닥이며 무엇인가를 내밀어 주신다.
넓직한 상자에 왕관을 쓴 그림이 있는 상자. 육각이 아니면 팔각 기둥의 촉촉한 크레파스가 20개 쯤 나란히 누워있는 '왕자 크레파스'.
사실 나는 색이 열 개도 안되는 값싼 크레용을 쓰거나 형이 쓰다 남은 쪼가리 크레파스만 써왔다. 새 크레파스에 그것도 왕자 크레파스는 언감생심 꿈도 못꾸던 것.
좋아서 어쩔 줄 몰랐고 더구나 선생님이 주신 선물이니 그 기쁨은 말할 나위 없었다.
그 해 늦은 봄 무렵 창경궁에서 무슨 전국 사생대회 비슷한 것이 열렸다. 어찌어찌 해서 참여하게 됐다. 한 집 걸러 옆집에 사는 친구와 같이 화창한 날씨 아래 그림 삼매에 몰두하던 중, 그가 땅색 크레파스를 빌려 달란다. 그 친구는 두 배나 큰 40색이 넘는 왕자 크레파스를 1학년 때부터 썼던 모양이다. 땅색을 다 썼는 지 몽당이 되어 있었고.
십여분이 지나도 그는 빌려간 땅색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상자에 넣고는 원래 자기 것이었다고 박박 우긴다. 내 크레파스의 땅색 자리는 하얗게 비어서 이빨 빠진 영구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40여색 크레파스 자랑질에 눈꼴이 시었던 차.
어려서부터 나는 유난히 손이 비교적 큰 편이었다. 쥔 주먹도 따라서 클 수 밖에 없다. 그 주먹에 그는 샌드백이 되었다. 얼마나 두들겨 팼는 지 그의 입술은 두 배가 되었고 코에서는 별로 맛 없어 보이는 찝질한 쵸콜릿 색깔이 줄줄 흘러 내렸다. 그의 눈에는 아마도 별이 총총하게 떴을 것이다.
'법 보다 주먹이 먼저 정의를 구현하는 현장'이란 말이 좀 근사해 보이지만 사실 열 받아서 날뛴 것이 더 맞다.
무슨 일이든 저지르면 꼭 댓가를 치른다. 몇 시간이 지난 후 폭발 일보직전으로 보이는 그 아이의 어머니가 엄청 씩씩 거리며 독사 눈을 뜨고 찾아왔다. 그의 어머니는 나의 모친께 별의 별 자존심 상하는 소리를 다 해댔다.
"얼마나 애를 무식하게 팼으면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느냐. 애를 무식하게 키워서 그런 것 아니냐"는 것이 골자인데 아무튼 한참을 따졌다. 나는 속으로 그랬다. 당신 아들이 무식하게 우겼기 때문에 무식하게 팬 것이라고. 무식하게 우기는데 유식하게 패냐고.
저녁 무렵 나는 폭행죄로 모친으로부터 사정없이 폭행을 당했다. 무식하게 맞았다. 나도 눈에서 별이 반짝였다. 무식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후 그 친구는 지금까지 나와 눈을 맞춰본 적은 없는 것 같고, 평생 안부도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어쩐 일인지 이 일이 있기 전에 찍은 사진이 한 장 달랑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