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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Mar 17. 2018

친구 4

잊고싶은 이야기와 잊어버린 친구들 4



이야기 다섯


초등학교 6년 간 바이올린을 배우고 연주하는 친구는 딱 두명이 있었다. 당시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배운 것인지 집이 부유하고 또 자신의 아이들은 천재인 줄 착각하는 많은 부모들처럼 그저 돈으로 발라서 가르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나고 보니 부유해서 시킨 것 아닌가 생각된다.

한 명은 바로 옆집에 사는 친구이고 또 하나는 3학년 때 같은 반  여자 아이였다. 옆집 사는 친구 집에는 종종 놀러가곤 했다. 부유하게 살았던 그 집은 상당히 교양도 있어 보이고 또 가끔 서양식 식사도 했다. 바이올린을 배우러 다니는 그의 모습과 조그만한 놈 한테 양복을 입히고 기름을 발라 어른처럼  2대8로 넘겨 빗겨준 머리도 멋져 보여 나에게는 어쩌면 동경의 대상이었는지 모른다.

날을 잘못 잡아 놀러간 어느 날 그 집 부모는 대판  부부싸움 중이었다. 그곳에서 그동안 듣보잡의 별의 별 희한한 욕을 다 들어봤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거의 한 시간 동안 서슴없이 퍼부어대고 있었다. 들어본 욕 중에는 가장 많이 들어봤고 또 거칠고 상스러운 종류의 욕도 그날 다 들어봤다.

집안의 세간살이도 막 날라 다녔다. 여기저기서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속으로

"이 친구의 부모님은 곧 이혼하겠구나"

생각했다. 우리 둘은 그의 방에서 쥐죽은 듯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괴로운 시간들이 참으로 느리게 지나갔다.

 그간 동경했던 교양있는 집안의 이미지는 동네 똥개가 벌써  물어갔다. 이후 또 하나 더욱 놀라웠던 것은 다음날 그의 부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또 헤헤호호 거리며 지내더라는 것이다.



 이야기 여섯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또 하나의 친구는 앞서 말한 여자아이다. 아주 똘망하게 생겼고 비교적 성적도 좋았으며 더욱이 나에게 늘 살가웠다. 참 아쉬운 것은 그 아이하고는 이상하게 짝꿍이 안된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자리를 바꿔 앉을 때마다 내심 짝꿍이 되었으면 했지만 애석하게도 1년 내내 단 한번도 짝꿍이 된 적이 없다.


하루는 그 아이가 샐샐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손을 잡고 부탁이 있다고 했다. 손은 또 왜 그렇게 따뜻하고 보드러운지...

주머니에서 무슨 종이 쪼가리 두 장을 꺼낸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 주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 없었다.  살펴본 즉 연주회  초대권. 어떤 유명 연주자의 연주에 앞서 그 아이가 한 곡 먼저 연주한다나 어쩐다나. 그리고 종이 쪼가리에 찍힌 날짜에 와서 자신의 연주를 꼭 들어달라는 부탁이다. 신동이라서 그런 것인지 재력으로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신동이라는 팸플릿의 설명은 그들의 희망사항이고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닌가 싶다.


사실 별 내키지 않는 연주회였지만 모친의 손에 이끌려서 공연장에 갔다. 모친이 사주신 꽃다발을 들고.

이내 그 아이는 연주를 시작했고 알지도 못하는 지루한 음악이 계속되었다. 나는 솔솔 잠이 찾아왔다. 누가 흔들어 깨운다. 정신을 차리니 모친이 얼른 꽃다발을 갖다주라 하신다. 졸다가 영문도 모르고 비몽사몽 간에 꽃다발을 단상 위의 친구에게 줬다. 날 쳐다보고 몇 번이나 고맙다며 배시시 웃는다. 귀여운 것.

그 장면이 사진에 찍혔다. 내가 부른 사진사가 아니어서 그 놈은 내 뒤통수만 찍었다. 거지같은 놈이다. 옆으로라도 찍을 것이지. 현상된 사진은 그 아이가 나에게 전해줬다. 버릴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그 아이 얼굴이 있어서 그대로 뒀다. 분명 나도 그 아이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사진첩을 볼 때마다 종종 그 아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구렁이가 제 몸을 추던 이른바 '바이올린의 신동'은 그저 평범한 어른이 된 것 같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눈여겨 보는데 옆 집 살던 녀석의 이름도 본 적이 없고 그 여자 아이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바이올린의 신동'이 아니라 '삶의 신동'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렇게 보편성을 지니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사람 냄새나는 더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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