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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Mar 20. 2018

친구 5

잊고싶은 이야기와 잊어버린 친구들 5


이야기 일곱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전학을 가지 않고 6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는 것은 어쩌면 복받은 일인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는 경우 보다 특히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경우에는 전학 확률이 월등히 높다. 아마도 부모의 전근이나 이사 등이 주 원인일 것이다. 이 경우 이전의 학교 동창은 공식적으로 없어지게 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집안에 발생한 상당히 복잡한 일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봄, 전학을 가게 된다. 서울 종로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서울의 동쪽 끝 부분에 있는 학교로 전학했다. 전학을 온 학교 근처는 기차역이 있다. 그 기차역에는 석탄 수송 열차에서 하역한 석탄을 산처럼 쌓아놓는다.  당시로는 비교적 외곽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차는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봄과 여름에는 철길을 따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모습이 아련하다.  가을에는 기차가 달릴 때마다 침목 주변에 자생하는 살사리꽃이 승객들에게 머리를 흔든다. 겨울에는 하얗게 쌓인 눈 속에 두 줄의 철길만 길게 보이는 가슴 시린 풍경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름 철길은 운치가 있는 곳이다. 또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늘 돌아온다. 그래서 사랑과 이별과 만남이 있고 또 마음 한 켠에 어떤 연민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기차역 주변이기 때문에 선로에서 노는 아주 위험한 철도법 위반 놀이도 있다. 쇠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차가운 철로에 귀를 대고 있으면 멀리서 절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차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구리 동전이나 긴 대못을 철로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둔덕 뒤에 쪼그리고 숨어서 철로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기다린다. 요란한 기차 소리와 함께 땡그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철로 위에 놓았던 동전은 납짝해진다. 가운데 구멍을 뚫고 엽전처럼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화폐를 훼손한 범법행위이지만 재미나다. 또 대못은 바퀴에 눌려 길쭉 납짝해진다. 그것을 잘 다듬고 모양을 만든다. 또 한 쪽 면을 시멘트 바닥에 갈면 한 뼘 쯤 되는 특이한 장난감 칼을 만들 수 있다. 방과 후 같은 반 친구들과 종종 이런 놀이를 하고 지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집에 가기 바빠서 기찻길에서 노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기차길을 사이에 두고 반대 편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판자촌이 있었다. 한 학급 당 그곳에 사는 급우는 60여명 중 대략 15명 정도이다. 그들은 늘 말수가 적고 또 어떤 일에 나서기를 꺼려한다. 아마도 경제적 어려움이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주눅든 삶을 만들어주고 또 어느 구석에 작게나마 그늘진 삶을 강요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친께는 비밀로 하고 그들과 기찻길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다른 급우들의 집에 가서 놀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그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도 그들끼리 주로 어울린다. 어쩌면 경제력의 형태가 친구를 사귀는 내실을 지배하는 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어느 하루 그들 서너 명을 집으로 불렀다. 같이 숙제를 하고 간식도 나누었다. 모친은 따뜻하고 편히 친구들을 맞아주셨다. 어디 사느냐 부모님은 무어을 하시느냐 자꾸 물으신다. 그들은 눈을 꿈뻑거리며 우물쭈물 대답한다. 한참 뒤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뒤로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친께서 그러신다. 앞으로는 "저런 아이들하고 놀지말고 같이 숙제하지 말라"신다. "친구는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고 하신다. 참 놀라웠다. 나는 모친께 "좀 못살 뿐이지 저 아이들은 좋은 아이들이에요"라고 대꾸했다가 말이 많다고 꾸지람만 들었다. 더 따지고 들었다가는 보리 타작이 시작될까 싶어 입을 닫았다. 사실 가슴이 아팠다. 그후 나는 기찻길에서 그들과 노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 친구들과의 연락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끊겼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기찻길을 좋아하고, 또 기찻길을 보면 그 친구들 생각이 가끔 나기도 한다.

앞서 비슷한 말을 했지만 삶은 어쩌면 경제 형태가 친구의 내실까지 지배하는 긴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좋든 좋지않든...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나의 아이들이 똑같이 나처럼 했다면 나도 역시 내 아이들에게 나의  모친처럼 그렇게 나무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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