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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Mar 24. 2018

친구 6

잊고싶은 이야기와 잊어버린 친구들 6


이야기 일곱


그는 빛고을에서 태어났다.

글재주가 아주 뛰어난 친구다.

실제로는 나보다는 한 살이 많다. 어느 화장실에서 담뱃불을 주고 받으면서 알게 된 이상하고도, 가장 친했던 친구.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문학상 시상식에서 시부분 대상을 받았다. 그 만큼 글 쓰는 재주는 부러울 만큼 뛰어났다. 당시에 서로 시를 써서 보여주곤 했는데 그의 시는 대단히 깊이가 있고 뛰어났다.  솔직히 유치하고 달달한 시만 쓰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는 방과 후 늘 나를 찾아 왔다. 친하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고등학생에게 나의 방은 술과 담배의 해방구이기 때문이다. 소주 한 병과 담배 한 갑, 그리고 라면 두어 개를 사가지고 온다. 그 나이에 술도 좋아하고 담배도 잘 피우고 여자 꽁무니도 잘 쫒아다녔다. 한번은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나의 형이 그 친구를 보고

"이 여자 친구가 백 번 째 친구냐?"

하고 농담하는 바람에 그 여자 친구와 종 쳐버렸다.

 

그의 아버지는 교장 정년 퇴직을 하신 분이었다.

늘 아들을 잡으러 다니셨다. 특히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는 나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평생 교직에 몸 담았던 분이니 공교육을 거부한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종종 나의 자취방에서 그는 아버지한테 잡혀가곤 했다.


유학가서 박사과정까지 철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철학이라는 학문이 돈벌이하고는 크게 관련이 없는 듯 했다.  늘 가방들고 강의만 다닌다. 차라리 그가 국문학을 했다면 최소한 중간 쯤 가는 문인이라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 유명한 시인이 되었을지 모르고...

국문학도 돈벌이 하고는 별반 관련없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그래도 뭔 미쳤다고 저하고 잘 맞지도 않는 철학을 한다고 인생 다 보내고...  


삶이라는 게 태어났으니 그냥 사는거지 뭘 그렇게 꼬치꼬치 알려 하냐고 한다.

그는 쉰이 좀 넘어서 간암으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 알콜총량제에 걸려서 평생 마실 술을 미리 다 마시는 바람에 서둘러 소환되어 저승으로 간 듯 하다.

시집 한권도 못 남기고 말이다.

그에게는 빈 하늘만 남았다.


유치한 시만 쓰던 나는 세 권이나 어줍잖은 시집을 냈는데 그가 보면 웃으려나.


그가 떠난 해 그에게 바치는 시를 한 편 썼다.



섬진강 친구  / 김선호


섬진강 맞닿은

빛고을 어느자락에서 태어나

섬진강 꽃그림자를 사랑하고

이제 하늘로 출가하여

섬진강에 뼈를 묻은 너

먼산 정수리에 노을이 지고

고단한 밤이 넘어 올 때

차디 찬 강물 속

다슬기 찾는 아낙의 손 스쳐가는

시리디 시린 바람따라

어둠의  꽃 그림자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너의 그림자


기정과 압록을 따라 강물은 흐르고

기찻길도 나란히 흐르고

그 아래  석축을 덮은

담쟁이덩쿨 만큼이나

피빛으로 물든

불우했던 젊음의 초상

인생을 말하는 시간에

안으로 안으로만 자신을 태우던 너

지금

너의 시간과 꿈 모두 멈추고

섬진강 달빛아래 고요히 잠드는구나

여기 파란 소주병 하나들고

너를 만난다


네가 좋아하던 시

아쉽게도

시간의 너울이 한참이나 지나가버린 지금

호곡나루 줄배 스쳐간 강물처럼

너의 시를  지닌게 없네

너와 함께했던 젊은 날의 기억

아무렇게나 부서져 흩어져버린

뚝방길 뿌연 먼지처럼

너무도 희미해져 버렸네

깊은 가을

잎사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황량한 강변 벗꽃길

이제

앙상해져 버린 너의 그림자와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뿐


그런데

평생 갈구하던

깨달음을 얻고는 간 것인가

섬진강 자락에

여전히 청년의 그림자로 남아선  너

섬진강 모래사장 재첩 껍데기에

인생을 버리고 간 시린 손

네가 그리운 가을이 외로워

문설주 기대 서서

문풍지 흔들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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