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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Mar 29. 2018

친구 8


잊고싶은 이야기와 잊어버린 친구들 8


이야기 열


그는 교토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 중간 시기 어디쯤 그다지 춥지않은 겨울 어느날 간간이 하얀 눈발이 날렸다. 나는 회사에 사나흘 휴가를 내고 교토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가 겨울방학이었기 때문에 얼굴보러 가기가 가능했다. 공부한다는 놈이 나보고 놀러오라는 것을 보니 그닥 열심히 공부는 안하고 여전히 해찰에 달인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본래 해찰의 달인이라 뭐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예상은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 그가 가진 여러 가지 재주 중에 가장 뛰어난 세 가지를 잘 실행하고 있었다.

첫째 잘 논다. 새로운 환경에 바퀴벌레처럼 잘 적응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놀이를 잘 개발해서 놀고 있다. 여전히 빠찡꼬도 하고 있다. 일본은 빠찡꼬의 종류도 엄청 많아서 그에게는 천국이다.

둘째 일본에서도 마당발이다. 오만 사람들을 다 안다. 친구도 엄청나게 많이 사귀고 있다. 돈 떨어지면 돈도 여기저기서 잘도 꾸는 모양이다.

셋째 역시 술은 늘 따라다닌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내는 하루 일과에 놀랄 뿐이다.


그는 교토의 명소를 하루 종일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저녁 때는 술 한잔 낼 일본 친구를 불러낸다. 서양 영화배우 뺨치는 아주 잘생긴 일본인 공무원이 나왔다. 어찌보면 서양사람 DNA를 받은 듯 하다. 그들 속어로 아이노꼬(あいのこ) 쯤 되는 것 같다. 키도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특히 코가 아주 높고 잘 생겼다. 키 작고 이빨이 툭 튀어나온 것으로 묘사되는그런 토종 일본인은 분명 아니다. 둘은 아주 친해 보였다. 그날 그가 사는 저녁은 교토의 명물 자라 요리.


미닫이문이 천천히 열린다. 다다미방으로 넓직한 도마와 작은 솥뚜껑만한 자라 한마리를 들고 쉐프가 들어온다. 날렵한 솜씨로 사시미칼을 놀린다. 세 사람 각각 하얗고 길쭉한 앞접시 위에 간, 허파, 심장, 살 등을 회로 올려준다. 붉은 빛, 핑크 빛, 연한 분홍색, 하얀 살색이 나란히 놓인다. 사이즈는 대부분 엄지 손톱만하다. 어떤 것은 파리 눈깔만 하다. 일본 요리답게 양은 코딱지 만큼이지만 모양은 그럴싸하다. 일본말로 정말 '메데 다베루 다베모노'이다. 즉 눈으로 먹는 음식.

사실 나는 참 허천날 것이라고 생각됐다. 저렇게 조금 먹고 우째 사나. 우선 내가 오늘 꽤 배고프겠구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잠시 후 미닫이문이 다시 열린다. 짜리몽땅한 꾸냥이 나무상자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거창한 리본을 풀고 여는데 요강단지 같은 것이 들어있다. 사이즈도 비슷하다. 뚜껑을 열고 주전자에 따른다. 정종이다. 그날 나는 그곳에서 두 가지 고통을 겪었다. 우선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꼴난 자라 사시미 손톱만한 것 몇 조각과 멀건 국물 한 대접을 저녁으로 먹고 있으니 뱃가죽이 등하고 아주 친해졌다. 게다가 안주 같지도 않은 개구리 눈깔만한 안주에 술은 요강단지만한 것을 1/3쯤 마시니 하늘이 핑핑 돌았다. 친구는 원래 양조장 파리 DNA를 지니고 태어난 놈이라 엄청 술을 잘 마시고, 저녁 초대를 한 공무원은 밑빠진 독 같은 주량을 가진 듯 했다. 술이 약한 나만 치사량을 마시고 죽어가고 있었다.


이튿날 나라(奈良県)행 기차를 탔다. 삼사십여분 가는 거리라고 한다. 전날의 요강단지 전투로 인해 속은 꽤나 뒤집어져 있었다.  기차 시간 맞추느라 허겁지겁 나와서  물 한 모금도 못 마셨다. 열차는 출발하고 십여분 후  열차 안을 오가는 이동식 수레 가게방에서 맥주 네 캔을 산다. 두 캔을 건네주면서 말한다.

"아침 식사야. 해장으로 시원하고 좋아 히히"

나는 속으로 그랬다. 너는 죽일 놈이야 정말 !

그래도 기차에서 배고프다고 징징거린 덕분에 나라에 도착해서 다행히 코딱지보다 조금 많이 큰 돈가스 하나 얻어 먹었다.



저녁은 또 다른 일본 친구가 나왔다. 맥주집에서 만나서 맥주로 저녁을 먹는다. 튀김 비슷한 것을 안주로 주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적다.

그래도 맥주는 배가 부르니 좀 견딜만 하다. 하지만 핑핑 돌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웬수가 날 술에 취해 죽게 하려고 일본에 오라고 한 듯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랬다. 너무 배가 고프다고.

그는 제법 큰 마트에 들러 소고기 반근을 샀다. 흰 쌀밥에 고기국 끓여 준다고.

택시에서 내린 후 이 미친 놈은 자판기에서 산토리 위스키를 한 병 또 산다.

집에 들어와 밥을 하고 고깃국을 끓이려는데 그런다.

"아차 소고기 택시에 놓고 내렸다"

난 속으로 그랬다. 거지같은 놈 별 지랄 다한다고.

그는 얼른 나가서 동네 푸줏간에서 다시 반근을 사왔다. 행복한 저녁이었다. 속으로 개새끼 소새끼 욕은 했지만.


다음 날 오사카성으로 갔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우짜고 저짜고  몇 마디 쳐씨부리더니 주마간산으로 구경을 시켜주고 선술집 거리로 데리고 간다. 또 시작이다. 몇 군데 들어가서 잔술 홀짝거리다가 교토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비교적 부유하게 사는 친구가 한잔 산다고 한다. 일본 친구는 허우대가 멀쩡 하고 체격도 좋아 보였는데, 더 중요한 것은 딱 봐도 돈 냄새가 난다는 거다.

찾아간 곳의 주점 주인은 이른바 기생 출신이라고 한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퇴기 아줌마 나이는 당시 50대 후반 쯤 보였다. 아주 작은 공간에 깔끔한 시설이 눈에 든다. 홀의 가운데 1평방미터쯤 사각 유리로 하늘을 뚫어 놓았는데 그 안에 파란 대나무가 자란다. 그날따라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떨어지고 있었다. 대나무 잎 위로 하얗게 떨어지는 눈은 정말 일본 그림을 보는 듯 운치가 있다.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바로 그 앞자리를 내어준다. 내가 귀한 게 아니고 세상 어디나 주점에서는 돈낼 놈이 귀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멋진 운치와 고급 식당 또는 술집은 곧 기아의 허덕임과 비례한다. 사실 나는 예상이 틀리기를 바랐는데 애석하게도 틀리지 않았다. 안주를 내온다. 각자의 도마 위에 멸치 세 마리, 고욤 사촌 쯤 되는 말린 것  세 개, 허연 치즈 쪼가리 세 조각. 그리고 시바스리갈 한 병을 뽕 소리나게 딴다.

이번에는 핑핑 도는 게 아니라 뱅글뱅글 돈다. 너무 빨라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니홍고(日本语)가 난무한다.


삼십여분이 지났을까. 일본식 가체를 한 보따리 머리에 얹고 사각형 가방을 등에 맨듯 한 기모노를 입은 젊은 기생이 옆에 앉는다. 얼굴은 밀가루를 하얗게 뒤집어 쓴 듯 하고 입술은 쥐를 두어마리 잡아먹은 것처럼 빨갛고 뾰족하게 칠했다. 자꾸 술을 권한다. 지금 같으면 기모노는 팬티를 입지않고 입는 옷인데 정말 안 입었을까 궁금했을 것이다. 취해서 죽을동 살동 할 때는 그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기생은 한 이십분 동안 술만 열심히 따르고는 다른 테이블로 갔다.  그날 역시 나는 요단강을 반쯤 건너다가 돌아왔다.


일본 최대의 호수 비파호(琵琶湖 : 비와꼬)를 거쳐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히코네성( 彦根城 ひこねじょう 히코네조)을 다녀왔다. 그날 곰탕같은 국물에 말아주는 전통 일본 국수를 사준단다. 어느 시장 골목으로  들어간다. 돼지 기름이 범벅이라 느끼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별로 먹지도 않았는데 배탈은 덤이었다. 그 음식에 술이 또 빠질 리는 없었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 보는 사람마다 그랬다. 어디 아프냐고. 얼굴이 반쪽이 됐다고. 사실 술병이 난거니까 그말이 맞기도 하다. 아무튼 그 거지같은 놈은 하는 짓마다 욕먹을 짓만 한다. 그 거지같은 놈이 이 가을에 그리워진다. 그래서 친구인가 보다.  나도 그에게 거지같은 짓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몫이다. 그는 저승에 있고 나는 이승에 있으니 기록은 나의 몫이고 나는 어쩌면 친구를 그리워하는 슬픈 승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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