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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Apr 22. 2018

터키 - 이스탄불 1

동양의 피가 흐르지만 서양의 경제를 추구하다    

   

수천 년의 시간이 단층처럼 퇴적된 단면을 찬란한 역사로 보여주는 나라 터키. 유구한 역사 속에서 돌궐(투르크의 한자 표현)이라는 숨길 수 없는 뜨거운 동양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유럽공동체에 가입하여, 서양이고 싶어 하는 나라 터키. 사실 터키는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앗시리아, 그리스, 로마, 오리엔트, 이슬람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든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나라이다.

    

그래서 늘 가보고 싶었던 곳 터키. 내가 아타튀르크 공항에 내려 맞닥뜨린 터키인의 인상은 짙은 수염과 눈썹에 움푹 들어간 눈, 그리고 다부진  체격에 호전적이고 호탕한 전사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호전적인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찍이 한국전쟁 때 용감했던 터키군의 위용은 익히 잘 알려진 바 있다. 또 히잡을 쓴 여인들은 여성 전체의 절반쯤 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무슬림 율법에 따라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여성들은 폐쇄적인 상황에 놓여 대체로 운동 부족으로 인한 하체 비만이 많고, 히잡을 씀으로 인해 얼굴이나 눈만 밖으로 내놓기에 눈 화장을 검고 진하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터키 여행을 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가보지 않은 생소한 나라의 볼거리 몇 군데를 말 타고 병풍 보듯이 구경하려고 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뭐 터키 전체의 문화나 역사를 꿰어보려고 여행한 것도 아니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싶은 것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현재의 명칭인  이스탄불로 바뀌게 되는 과정이다.


<갈라타의 카라쿄이 지역에서 바라본 갈라타 브리지 모습. 다리 아래로 고등어 케밥집이 즐비하다.>

   

본래 콘스탄티노플은 AD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 로마가 위협을 받자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던 비잔티움을 제2의 수도로 삼고 콘스탄티노폴리스라 부르면서  시작됐다. 콘스탄티노플 명칭은 콘스탄티누스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으로서 이때부터 비잔틴제국 또는 동로마제국이라고 칭한다. 사실 나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잘 모르던 비잔틴제국의 흥망을 확실히 알게 됐다.


아야소피아 성당 내부


이 동로마제국은 이후 1천여 년을 이어 오면서 세력과 영토를 다 잃고 콘스탄티노플 만 남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1453년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정복자로 불리는 제7대 술탄 메흐메드 2세에 의해 함락되면서 콘스탄티노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망할 당시의 황제 역시 콘스탄티누스 11세라는 이름을 가진 황제였다. 즉 콘스탄티노플을 세운 황제 이름과 멸망할 당시의 황제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동로마시대 AD 6세기에 지어진 아야 소피아 성당.  밤의 아야 소피아 성당 모습.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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