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소피아 성당. AD 6 세기 동로마 시대에 지금의 골격으로 재건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5월 23일 패망하고 이스탄불이라는 오스만튀르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이스탄불은 실제로 과거 콘스탄티노플 보다는 훨씬 크게 번성한 상태이다. 이스탄불은 크게 세 군데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본래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과, 그 북쪽 골든혼(Golden Horn)이라는 만(湾)의 맞은편 갈라타 지역(갈라타 탑으로부터 탁심 광장이 이어지는 지역), 그리고 흑해에서 에게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를 건너 서남쪽 아시아라고도 할 수 있는 위스크 다라 지역이다.
콘스탄티노플 지역은 인류 역사상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손꼽는 아야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있는 이스탄불의 중심지이다. 갈라타 지역은 갈라타 타워가 있는 곳으로 평일에도 갈라타 탑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길고 긴 줄을 서는 곳이다. 나도 한번 안을 보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두 시간은 족히 될 것 같아 포기했다. 그냥 꼭대기만 쳐다봤다. 거기 긴 꼬리를 가진 비행기가 지나간다.
또한 갈라타 지역은 터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약 600만 명의 팬을 가지고 있는 최고 인기의 갈라타사라이 명문 축구팀이 있는 곳이다. 갈라타사라이는 '갈라타 궁전의 전사들'이라는 의미인데 그냥 글자만으로는 갈라타 궁전이다. 이 축구팀은 갈라타 사라이 고등학교 축구부로 처음 시작하여 프로 축구팀이 되었다고 한다. 마침 어느 일요일 갈라타사라이 축구 경기가 있던 날 탁심 광장에서 내려오는 카페거리에서 광팬들을 만났는데 역시 광팬답게 꽤나 소란스러웠다.
한편 위스크 다라 지역은 노래로 아주 유명해서 우리나라에서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위스크 다라 번안곡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곳은 터키를 통틀어 석양이 아름답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곳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보면서 1864년부터 만들었다는 하피 무스타파의 달달하다 못해 혀가 저린 과자를 홍차와 함께 마시는 느낌 또한 새롭고 대단히 이국적이다.
1453년 무렵 콘스탄티노플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지역만 남았지만 흑해와 에게해, 그리고 지중해를 잇는 서양과 동양 간 교역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다. 따라서 이전의 술탄들도 무역의 필요성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물론 콘스탄티노플은 너비 5미터가 넘는 3중 방벽과 해안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기에 섣불리 공격할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해전에 강한 베네치아 함선과 제노바 함선이 골든혼을 지키고 있어서 해상 공격도 만만치 않았고 골든혼의 물속에 쇠사슬을 설치해 놓아서 함선이 쉽게 진입할 수도 없었다.
지금도 이 지역을 가보면 엄청난 두께의 방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어떤 곳은 가정집 담이 되었고 어떤 곳은 카페의 벽으로 쓰인다. 또 어떤 곳은 넓은 해변 공원의 울타리 역할도 하는데 여기서 바비큐를 해서 나눠먹는 터키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무슬림이기 때문에 술을 먹지 않는다. 술이 빠진 바비큐라서 우리처럼 청탁 불문의 주당들에게는 좀 아쉽게 보이기도 한다.
<블루모스크 아래에 위치한 바자르의 상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