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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Apr 24. 2018

터키 - 이스 탄불 3

야망이 세상을 요동치게 한다

<에디르네의 셀리미에 모스크의 안과 밖>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아버지 무라드 2세와 노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 번째 아들였다.  형들과 달리 성골은 아니었다.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메흐메드 2세는 일찍이 지금의 에디르네(Edirne : 과거 그리스의 아드리아노 폴리스였던 곳) 지역에서 술탄이 됐다. 그곳은 당시 오스만튀르크의 수도가 있던 곳이다. 오늘날 에디르네에는 도시 중심부에 대형 모스크가 있는데 이 셀리미에 모스크(Selimiye Mosque)의 출입문은 파샤 시장(Ali Pasha Bazaar)을 거쳐서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여행객은 모스크의 출입구를 찾는데 꽤나 두리번거리면서 찾아야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샤시장과 시장안을 통해서 들어가는 모스크의 입구>


지금  에디르네에서는 불가리아 국경이 가까워서 국경 출입이 가능토록 등록된 승용차나 택시를 타면  불가리아의 고대 도시 플로브디브까지 갈 수 있다. 또 이스탄불에서는 에디르네까지 고속버스로 두어 시간쯤 가는데 터미널에서 머리가 허연 노인네가 큰 소리로 하루 종일 에디르네를 외친다. 한 시간 남짓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호객하는 노인네의 쉬어버린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렸다. 그래도 노인네가 지쳐 보이는 기색은 없다. 그는 아마 죽을 때까지 에디르네를 행복하게 외치며 지낼 것 같다.

<하루종일 에디르네행 버스를 알려주는 이스탄불 버스터미널의 노인>
<에디르네의 시내에서 만난 과일을 파는 소년. 뒤에 보이는 '가지 바바'라는 식당은 꽤나 유명한 식당이다. 에르디네를 갈 일이 있다면 꼭 들러볼만 하다>
<에디르네의 어느 이발소. 이 주인은 자를 머리가 별로 없을 듯>  

  

이후 메흐메드 2세는 부친의 수렴청정 등과 같은 어러움 끝에 1452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실질적인 술탄에 오른다. 술탄이 되자마자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명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기에 이른다.

주요 전쟁 준비로는 주변 국가에게 참전을 요구하는 것, 헝가리 대포 기술자 우르반을 고용해서 포신 길이 8미터 포탄 무게 500kg짜리 대포를 만드는 것, 골든혼에서 해전을 치를 전함 수 백 척을 건조하는 것 등등이었다.     


1453년 4월 메흐메드 2세는 약 15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이끌고 3만 명이 지키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한다. 이 콘스탄티노플은 그동안 29번의 외침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십자군 전쟁 때 적과의 내통으로 문을 열어준 적은 있었다). 그러나 지축을 뒤흔드는 우르반의 대포는 하루 7~8번 발사되어 깊이 2미터에 이르는 구덩이를 남기며 콘스탄티노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해상에는 또 개미떼처럼 전함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터키에서 만든 '정복자'라는 영화 내용에 따르면, 우르반 대포는 과열되어서 수시로 깨졌고 이를 냉각시키는 과정에서 우르반은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대포는 우르반의 딸이 성공시켜서 두께 5미터의 방벽을 부순다. 기록상으로는 딸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없는데 아마 여자가 나와야 영화다워 지니까 감독이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여배우는 미인이다.

<전함을 산으로 끌고 올라갔던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 백마를 탄 사람이 메흐메드2세이고 뒷쪽에 흰 터번에 흰 수염이 난 사람이 수상이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사흘 후 참수된다>

 

해전 경험이 전무한 오스만튀르크의 해군은 쇠사슬 때문에 골든혼 진입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해전에서는 멀리 이탈리아 북부에서부터 지중해와 에게해를 거쳐 들어온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대형 전함에 상대가 되지 않아서 거의 애 하고 어른 싸움 정도였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오스만 튀르크 해군은 어쩔 수 없이 해괴한 작전을 펼친다. 물속에 드리워진 쇠사슬을 통과하지 못하자 배와 대포를 끌고 갈라타 지역의 언덕을 넘어서 골든혼으로 진입하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배가 산으로 가는 작전인 셈이다. 이렇게 육상과 해상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49일 만에 콘스탄티노플은 우르반 대포를 맞아 부서진 방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스만튀르크 병사들에게 무너지고 만다.    

그날은 1453년 5월 23일이었다.

 

 고성은 흑해를 통해 들어올 지 모르는 지원군을 미리 막으려고 오스만튀르크가 1452년 쌓은 성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이 600여미터 밖에 안되는 병목지역에 대포를 설치했다.

         

이스탄불에서는 낚시하는 사람이 꽤나 많다. 고성 앞이든 선착장이든 다리 위든 정어리 새끼로 보이는 고기가 연신 올라온다.
갈라타 지역의 카라쿄이 선착장이 있는 곳. 뒤쪽으로 작은 어시장이 있고 선박과 관련된 공구상과 고등어 케밥집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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