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잡는 도시 벨리코 터르노보
플로브디프 공항 헤르츠에서 차를 랜트했다. 노란 유채꽃이 지평선이 되어버린 길을 달리고 구름이 가슴에 맺힌 하늘 아래를 달렸다. 조수석에 앉아서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주절주절 떠들며 인간 네비게이터를 하다가 그만 잠들어 버렸다. 차는 한 시간 반 쯤 달리다가 봄바람이 상큼한 어느 구릉 위 시골집 같은 휴게소에 앞에 멈췄다.
<산 넘고 물 건너다가 들어간 휴게소. 옛날 공산권 냄새가 물씬 난다>
<이 꼬치 요리가 하도 맛있어서 다른 곳에서 몇 번 같은 것을 주문해 봤는데 이곳 맛을 절대 못 따라간다>
쌀밥을 요구르트에 넣어 만든 처음 먹어보는 디저트를 먹었다. 아마도 전통적인 방식인 듯 하다. 큰 숯불판에 돼지고기 꼬치 바베큐를 굽는 할머니의 팔뚝 문신이 멋지다. 할머니나 젊은 딸이나 이모나 할 것 없이 온 몸에 문신 투성이다. 바베큐는 가격도 맛도 그만이다. 몇 개를 더 주문했다. 이 식당 사람들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스페인어를 한다. 스페인에서 몇 년 살다 왔다고 한다. 비오형하고 말이 통한다. 할머니도 무지 좋아한다. 스페인어도 잘하는 비오형은 아무래도 어디를 가나 할머니들한테 인기가 있는가 보다.
<이 식당의 쌀밥 요구르트가 휴계소 쌀밥 요구르트와 거의 같았다. 견과류가 뿌려져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산 넘어 물 건너 고도가 제법 높아 보이는 벨리코 터르노보에 도착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해발 360미터 쯤 됐다. 제2 불가리아 공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시내에 들어 서서 언덕에 서면 3,0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듯한 도시. 그리고 도시의 동쪽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12세기 때 지어진 성곽들. 그 꼭대기에는 성당이 있다. 내부는 아주 모던한 성화 페인팅이 눈길을 끈다.
점심을 먹고 나와보니 자동차 바퀴에 커다란 쇠목걸이를 해놨다. 주차시간 초과란다. 십분 초과됐는데 거의 한 시간 주차요금의 10배에 달하는 벌금을 냈다. 자동차도 사람만큼 비싼 점심을 드신 셈이다. 그래도 해피한 것은 가장 유명하고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와인 낮술 곁들여서 식사를 푸짐하게 했는데도 음식 가격이 너무 착하다는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1/3 값. 나는 형들이 지어준 별명 답게 늘 '2인분'을 먹는다. 서울가기 전에 임신 8개월 쯤 되어 보이는 배를 해산하고 가야 하는데 ...ㅠ. 그런데 늘면 더 늘었지 줄어들 생각을 안한다는 게 더 문제다.
아기자기한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와인 매장은 참새 방앗간이다. 매일 두어 병 씩 사가지고 호텔에서 셋이 나눠 마시고 잔다. 배가 나오는 것도 걱정이지만 알콜릭되는 것도 걱정되기는 한다. 그래도 먹고 죽은 귀신은 화색도 좋다 했으니 겁나게 먹고 본다.
<지붕 고치는 양반이 뭘하나 봤더니 스마트폰 보고 있다>
기왕 먹는 이야기 시작했으니 저녁 식사를 했던 식당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곳은 1858년부터 식당을 했다는데 고성의 성벽을 담으로 쓰고 있다. 식당을 통해서 박물관을 들어가는 묘한 구조이다. 와인을 서빙하는 나이든 아저씨의 예절이 최고 수준이라고 빈센트형이 칭찬한다. 요리 또한 대단히 절제되고 품위있다. 분위기는 오래된 성벽이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도드라져 있기에 두말할 나위 없이 운치가 있다.
박물관 한쪽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을 찍어봤다.
불가리아에서 꽤 유명한 작가들 작품이라고 설명하는데 난 잘 모르겠고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