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연안의 개똥 천국 '바르나'
<바르나는 불가리아 동쪽 끝 흑해 연안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지정학적으로는 상당한 요충지로 볼 수 있다. 바르나에서 하루를 지내고 남쪽 부르가스로 이동할 예정이다. 부르가스에는 네세바르와 소조폴이라는 명소가 있다>
한때 불가리아 최고의 휴양지로 각광받던 바르나.
빼어난 경관이 숨막히게 아름다운 곳.
흑해 연안에서 가장 크고 잘사는 도시.
이런 수식어가 늘 바르나 앞에 붙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수식어는 개가 물어갔다. 그리고 똥만 싸놨다. 불가리아 동쪽 끝 흑해를 끼고 있는 가장 큰 도시에 도착했을 때 흑해가 만들어놓은 짙은 안개 만큼이나 도시는 암울해 보였다. 10년 전부터 이 도시에는 관광객이 사라지고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사라졌다고 한다. 내가 굳이 이유까지 알 것은 없고 아무튼 좀 그랬다. 길거리마다 개똥만 천지이다.
<흑해가 만든 희뿌연 안개 때문에 분간이 잘 안된다>
게다가 친절한 사람이 어쩌다 다가온다. 발칸반도에서는 친절하면 이상한거다. $나 유로를 좋은 환율로 환전해 주겠다느니 음료수를 드시라고 주겠다느니 등등 이런 친절한 경우는 대부분 사기꾼으로 보면 된다. 길에서 환전해주는 척 하다가 돈을 갖고 튄다. 음료수를 택시 안에서 받아 마시고 깨어나보면 쓰레기장에 누워 있거나 그런단다.
사실 바르나는 기원전 4,000년 전 사전시대 유적이 있고 또 로마시대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지금도 기계·섬유·식품공업을 중심으로 수많은 기업이 집중되어 있으며, 대형 선박용 도크와 조선소가 있다. 또 포도주를 생산하며, 해군사관학교와 의과대학, 해양어업연구소 등이 있는 꽤나 거창한 도시였다.
안개가 가득한 흑해 바다를 바라본다. 정말 세계사 교과서에서나 읽어보던 바다 이름이다. 형들은 손을 담가보고 싶다고 한다. 맛도 보고 나서 덜 짠 것 같다고 한다. 바다가 다 똑같지 참나! 아닌가? 아님 말구.
그런데 아닌 것이 맞다. 흑해는 북부로부터 드네프르강, 드네스트르강, 서부로부터 도나우강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민물 때문에 표층은 18% 내외의 저염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덜 짠 것 맞네.
흑해라는 명칭은 15∼16세기에 오스만튀르크가 연안지역을 정복하고 튀르크의 바다가 되었을 때 비로소 '흑해'라고 불렀다. 이는 시커먼 바다에서 가끔씩 때아닌 폭풍이나 짙은 안개로 위험에 휩싸이게 되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로 그 현상을 바르나는 나에게 그대로 보여줬다. 안개낀 흑해에서 중세의 선박 모형의 카페에 앉아 달달한 티라미슈와 커피 한잔을 마신다. 너무 안개가 깊어 바다도 잘 안보인다. 흑해가 맞기는 맞나보다.
<1886년에 지어진 성모영면성당>
<바르나에서 가장 멋진 극장이라고 한다. 공연을 못봐서 아쉽기는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1886년에 지어진 성모영면성당도 들르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극장도 들렀다. 시내는 한산하고 표정이 없다. 바닷가 방파제에 세워진 조형물 밑에 키릴문자로 뭐라 뭐라 써놨는데 그걸 못 읽어서 돌아다니는 내내 머리 속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이제 머리 속이 개운해지게 알콜로 소독할 시간이다.
어느 식당에 걸어놓은 재미있는 그림들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