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의 진주 ~부르가스~ (상)
뭘 기대했길래 바르나에서 그렇게 실망을 했을까. 원래 바르나는 그런 모습이었던 것을.
아무튼 짙은 안개와 개똥의 기억을 뒤로 하고 두 시간 쯤 흑해 연안을 따라 남으로 달리다가 산맥 하나를 넘어오자 커다란 호수가 눈에 들고 이내 부르가스 시내로 접어든다. 부르가스 일정은 2박3일이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Grand Hotel and Spa Primoretz에 도착했다. 호텔 껍데기는 그럴싸했다.
무슨 호텔 진입로 진입 차단장치를 군부대처럼 땅바닥에서 직경 50cm 짜리 쇠로 만든 대형 파이프가 올라오도록 만들었을까. 경비는 리모컨으로 쇠파이프를 발기시켰다가 집어넣었다가 한다. 느낌 이상해. 아무튼 흑해를 끼고 있는 숙소는 다행히 편안해 보인다. 체크인을 끝내고 우리는 호텔을 나와 가까운 네세바르로 향했다.
얕은 교각 위를 지나 하나의 작은 섬으로 들어간다. 나무 쪼가리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풍차 비슷한 것이 교각 옆에 있다. 광장 가까운 바다 쪽에 세워진 무슨 동상 아래에서 어부가 비린내를 풍기며 물고기를 손질한다. 갈매기가 눈 빼고 기다린다. 어부가 던져주는 내장을 받아 먹으려고 군침을 흘리고 있다. 물고기는 바다에 살고 어부는 물고기를 쫒고 갈매기는 어부를 따라 다닌다. 그게 기원전부터 그 모습 그대로 이어져 온 풍경이고 삶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3,000년 전 트라키아인이 정착하면서부터 도시가 발달했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 청동기 유적도 출토된다고 한다. 이후 그리스, 로마, 비잔틴, 불가리아 공국, 오스만 튀르크, 불가르 등의 세력을 거치면서 당시의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섬 전체가 박물관이고 유물이다. 특히 많이 남아있는 것이 헬레니즘 문화 유산이다. 섬의 어디를 가나 고색 창연한 교회와 목조 건물이 즐비하다. 가장 오래된 교회는 AD 6세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이외에도 교회가 무지 많다. 머리 아프게 교회 이름같은 것 알고 싶으면 구글에서 검색하면 겁나게 나온다.
<네세바르는 부르가스에서 버스나 택시로 올 수 있다. 대략 30여 km 정도된다. 승용차는 부두에 있는 주차장에 세우면 된다.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서 간판에 가끔 영어도 보인다. 멀리 수퍼마켓과 환전소는 영어로 된 간판을 달고 있다>
네세바르는 오랜 동안 흑해를 끼고 휴양과 무역으로 번성해왔다고 한다. 지금은 섬의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불가리아에 눌러 살아야 한다면 이 평화로운 섬에 살고싶다. 가끔은 안개가 끼는 하늘과, 투명한 빛의 바다와, 소금끼 적은 상큼한 바람을 맞으며 쪽배를 타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굶어죽기는 딱 좋을 것 같다.
눌러앉아 굶어죽기 딱 좋은 분 하나 더 있다. 선창가에서 온 몸에 바다의 기를 모아서 품새를 펼치고 있는 비오형. 그래도 형은 동양적 무술 비슷한 것을 한다고 굶어죽기 전에 언년이 보따리로 얼른 싸서 데리고 갈지도 모르겠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음반 가게에 들렀다. 음반 가게 주인 할머니하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한참 이야기 한 이유는 말이 안 통해서... 할머니가 추천해주는 음반 한장 샀다. 서울에 와서 검색해보니 Mitko Shterev라는 작곡가 겸 피아노 연주자였다. 1946년 생이란다. 음반에는 키릴어로만 써 있어서 찾느라 애먹었다. 할머니의 안목에 새삼 놀랐다. 이 음반은 Mitko Shterev 자신이 작곡한 영화음악 주제곡들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