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의 진주 ~ 부르가스 ~ (하)
애인이 예쁘면 뭔 짓을 해도 다 예뻐 보인다. 마누라가 예뻐 보이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고 한다. 동네도 예뻐 보이면 똑같이 안개가 껴도 운치있어 보인다. 그만큼 인간은 간사하다. 부르가스는 예쁜 애인이거나 예쁜 마누라 쯤 되는 도시이다. 게다가 옆에 예쁜 처제로 네세바르와 소조폴이라는 항구도 부르가스에 소속되어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부르가스 법원>
<Troikata Square 광장>
부르가스 시내는 기차역으로부터 부르가스 법원으로 가는Troikata Square 광장을 잇는 번화가 주변이다. 그 직선로를 따라 가로수길 세로수길이 겹쳐있다. 지금 여름 성수기를 대비해서 곳곳에 보도를 정비하고 새벽부터 가게방을 리모델링하느라 분주하다. 바르나 하고는 완전 딴판이다.
부르가스는 카페도 많고 식당도 많고 또 기념품이나 편의점, 화장품 가게, 옷가게도 꽤나 많이 보인다. 도시가 활기가 있다. 안개가 살짝 낀 대로를 갈매기도 걷고 사람도 걷는다. 불가리아의 대표 상품 장미 향수나 오일, 크림은 이곳에서 사면 된다. 그런데 가격을 보면 플로브디프나 벨리코 터르노보나 부르가스나 별 차이가 없는데 부르가스의 상품은 구멍가게 제품이 아니라 규모있는 메이저 회사에서 만들어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장미오일 1g을 추출하기 위해 장미가 1,500송이 정도 필요하다고 한다. 때문에 장미오일이 들어있는 화장품류는 가격이 제법 비싼 편이다>
꽃을 든 할머니는 벤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 지나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그렇다. 카페 창 너머로 연인의 포옹하는 모습이 잡힌다. 좋겠다. 시쳇말로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나이에 부러울 것도, 지고 이길 것도 없다. 남자는 죽을 때 철이 든다고 했다. 철 들면 안되는데...ㅋ 그래도 스마트폰 카메라에 미인들이 잡히는 것 보면 철 들려면 아직 먼 것 같기도 하다.
<이 아저씨도 옆에 지나가는 언니 쳐다본다. 이 아저씨도 철 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 듯. 그러다가 넘어질라...>
부르가스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35km를 운전해서 소조폴에 도착했다. 소조폴도 BC 6세기부터 번성해온 어촌이자 아름다운 휴양도시다. 건축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꽤 의미있는 곳이라고 한다. 한산하다. 아직 유럽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올 시즌이 아니라서 어디를 가나 조용하다. 손님이 없으면 세상 어디나 가끔 오는 손님에게 친절하다. 카페 주인은 개를 데리고 산책 나와서 우리가 가고싶다는 곳까지 데려다 준다. 이곳 저곳 구경을 했지만 1인 교회라는 곳이 인상적이다. 혼자만 들어가서 기도하는 곳.
<소조폴 해안의 요트 정박장>
<버스 터미널 앞에 노인들이 승객을 대신해서 앉아있다. 앞에 서있는 사람이 이장님이신가?>
<불가리아가 장수하는 나라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요구르트 효능 어쩌구 하면서 말이다. 이 할아버지들 뒤에 보면 벽보에 죽은 사람들의 사진과 신상 정보를 담고 있다. 죽음은 어쩌면 생각 속에 사는 삶의 또 다른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2010년 경 이 소조폴에서 세례 요한의 뼈가 발굴되었다고 소피아대학 고고학팀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세계 고고학계가 대꾸도 안하는 것으로 봐서는 개뻥 발굴 보고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히려 소조폴에서는 시신 가슴에 대형 쇠못을 박아놓은 것들이 자주 발굴되어서 어쩌면 뱀파이어로 낙인 찍힌 사람들을 처형한 것이 아닌가 하는 고고학 발표가 가끔 있다.
<Ресторан Зои. 이 키릴어를 읽으면 '레스토란 조이'이다. 배에 쓴 글씨가 바로 이것. 별거 아니다. 조이식당이라는 말. 이 식당 문닫았다. 개뿔이나 아무 것도 아닌 식당인데 지붕에 배 모양으로 장식하는 바람에 트립어드바이저에서는 겁나게 좋은 식당처럼 떠든다>
<소조폴의 아이콘 1인 교회>
<비수기라서 대부분 카페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 집만 유일하게 문을 열어놨는데 손님인 듯한 할아버지 두분이 엄청 담배를 피고 있다>
<이 언니가 카페 주인이다. 안내해준다고 우리를 데리고 간다. 신랑은 맹인이다. 그래도 설걷이는 능숙하게 잘 한다. 장애있는 남편을 극진히 챙기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다시 밤안개가 꿈처럼 다가오는 부르가스로 돌아왔다. 재즈 공연을 보면서 한 잔.
호텔 옆 해변을 따라 조성된 공원에, 뭔가 말해주고 싶은 듯 말해주고 싶지 않은 듯 흑해의 뿌연 언어가 가득하다. 백사장을 따라 걷고 가로등에 부딪히는 밤안개 아래를 술 취한 채 걷는다. 불가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었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 ㅡ두 분 형님께 진심으로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