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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Jun 16. 2018

경매에 팔린 사마귀


경매로 팔려간 사마귀 / 김선호


이슬람의 사촌 쯤 되는 언어로

끊어졌다 이어졌다 지글지글 노래하는

찬장 밑의 다이얼 손잡이 빠진 라디오가

자정을 알리는 알람 소리를 듣고 잠이 들면

분침의 칠이 벗겨진 시계는

약간은 질척한 부엌 바닥에서 일어나

천천히 어스름 새벽을 불러오고 또 하루를 점친다

안개가 우물에서 스멀스멀 빠져나와

쌀알을 펼치고 괘를 읽을 때

암탉은 얼른 쌀알을 쪼아 먹고

헛기침만 남긴다

그러다 솥으로 들어간다

투표를 하면 살려줄 지도 모른다고

선거운동용 확성기는

하루종일 빽빽 소리를 지르고 있다


대나무 잎 스치는 소리 스산하다

스산한 소리는 무지개 색을 만든다

짧고 굵은 독사는 무지개 색을 입고 있다

습한 잎들 사이로 눈을 깜빡인다

이석증에 걸려 어지러움을 호소하면

움직이지 말고 눈을 지그시 감으라고 한다

물지는 않겠다고 한다

장독대에 말리는 삶은 고구마는

바람이 반절 쯤 훔쳐먹고

나머지는 아이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걸음을 멈춘 바지랑대가 짧아지면

축축했던 광목은 가끔 몸을 뒤집으며

태양이 대가리 끝에 와있다고 펄럭인다


집에 가고 싶은데 집이 없어졌다

어쩌면 그 집은 TV 속에 잠들어 있는 지 모른다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타고 가도

후끈한 김만 땅에서 올라올 뿐

대문을 열지도 못하고

훌쩍 자라버린 벼는

너희 집은 여기가 아닐거라고 머리를 흔든다

경운기가 지나면서 패인 자국에

혹 주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잘 살펴 보란다

은행에서 경매로 팔아버린 사마귀가

화가 났는 지 경운기를 막아섰다

진짜 막으려고 한 것인 지

그냥 톱처럼 생긴 앞발로 개인기를 보여주려고

객기를 부린 것인 지

탈탈거리며 지나간 경운기는

진흙만 한덩어리 똥처럼 남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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