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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Jun 19. 2018

"개 사요 !"


개 사요! / 김선호


황토가 부슬부슬 부서지고

사이사이로 성글게 엮은 갈대가

갈비뼈를 드러내는 토담집

먼지 앉은 거미줄은 덤이다

받쳐놓은 다리가 새종치같은 툇마루에

게으른 햇빛이 쪽을 세고 있을 때

훌쩍 큰 해바라기가 창문에 그림자 던져놓고

기웃기웃 문풍지 흔들며

격자문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정작 그 문을 열고 들어온 시커먼 놈은

스무살에 동네 처녀를 자빠뜨려 얻은

동네 친구의 아들이든지

아니면 개구멍으로 받아온 달빛이든지

아무튼 가마가 두 개라서 장가를 두 번 간단다

애엄마는 어디 갔냐고 물었다

도망간 지 좀 됐다고

물어본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먼산을 본다


또랑을 끼고 돌면

손이 세 개 쯤 되는 손재주 좋은 어린 목수가 산다

재주가 좋으면 땟거리가 없다는데

나무를 자유자재로 만진다해서 목수라지만

목수는 매의 눈이라

눈대중으로 잘라도 사개연귀짜임이 맞는단다

그래서 나무 목도 되고 눈 목도 된다나

믿거나 말거나


목수네 집을 지나 질척한 논길을 지난다

논길 끝 샛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풀잎의 소리를 배웠던 공간

강물이 생각을 가르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꽃잠보다 깊은 잠을 청해도

강물은 여전히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손바닥만한 붕어를 만나면

금빛 비늘이 떨어지고

암탉은 어랭이에서 내려와 내장을 기다린다

품던 계란과 바꿀 심산인가 아닌가

또록또록 굴리는 눈이 꼬리별을 따라가는데

드렸다 뒤집어졌다

하루종일 빈들대던 검정색 잡종개 일어나

닭 꼬랑지 좇고 다닐 때

"개 사요"

개장수 소리 울타리를 넘어 온다

천적은 백 걸음 밖에서도 안다나

잡종개는 대나무 숲으로 얼른 몸을 감추고

석양도 길고 긴 그림자들 한데 모아

마당에서 천천히 꼬리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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