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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Jun 29. 2018

" Shall We Dance ? "

탱고의 새로운 시도


고탄 프로젝트(Gotan Project)의 탱고


* 착각의 시간

서유럽 마르크스주의 형성에 커다란 기여를 한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 1891 ~ 1937)는 이런 말을 남겼다.


“위기란 낡은 것은 죽어가는 데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않는 상황이다”


정말로 파시즘 정권의 전형을 보여주던 무솔리니 치하에서 오죽하면 이런 말을 했을까 싶다. 특히 그는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의 발전이라는 것은 때에 따라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뭐 그런 것. 때문에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기우일 수도 있다는 것.  왜냐하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시점에 새로운 것이 멈춰있는 것 아닌가 가끔 착각할 뿐.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과거라는 토양 속에서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고 또 개척하는 누에보가 늘  나타나는 것. 그리고 장르까지 뛰어넘거나 뒤섞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크로스오버가 모습을 보이는 것.

 



* 탱고의 진화

우리가 익숙하게 듣고 있는 탱고 역시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전해 왔다. 본래 탱고란 19C 중반 이탈리아의 뱃노래와 스페인의 플라멩코, 쿠바의 아바네라, 아프리카의 탱가노 등의 리듬이 복합적으로 합해져서 태어난 것이다. 그것은 당시 남미의 정치적, 사회적, 민족적 상황과 정서가 반영되어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것들로부터 시작해서 188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지역 춤인 밀롱가는 오늘날 탱고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실제로 탱고는 유럽에서 하층민으로 살다가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유럽의 이민자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항구에서 향수를 달래며 듣고 춤추던 음악이다. 이 탱고 음악에 사용되는 전통적인 악기 반도네온은 하층민이었던 이민자들의 고된 생활에 걸맞게 구슬프고 여운이 길게 남는 소리를 낸다. 바로 이 시기의 탱고를 나는 <탱고 1.0>으로 부르고 싶다.

 


*가르델과 피아졸라  

이 <탱고 1.0>은 20C 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유럽으로 건너가 <탱고 2.0>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러한 진화의 중심에는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 1887 - 1935)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 그는 프랑스 태생으로 네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해 와서 1910년 음악계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가 그렇게 추앙받는 이유는 예컨대 싸구려 선술집 음악이나 길거리 음악 취급을 받던 탱고를 클래식에 버금가는 세계적 음악 수준으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의 음반은 78 RPM 축음기용 SP판으로 남아있고 또 이것을 리마스터링 해서 CD로 발매된 것이 있어서 지금도 들어볼 수는 있다.


한편 <탱고 2.0>은 또 한 번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된다. 1950년대 아직도 아주 관능적이고 반복적이며 원초적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리듬의 탱고는 ‘누에보 탱고’라는 진화의 모습으로 변화해간다. 즉 <탱고 3.0>이 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피아졸라(Astor Pantaleon Piazzolla : 1921 - 1992)가 있다. 그의 업적은 탱고를 클래식과 같은 세계적인 장르의 반열에 올려놓은 진정성이라고 하겠다. 즉 올드 가드 탱고의 요소에 재즈와 클래식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불어넣어 완전히 새로운 ‘누에보 탱고’를 창조해낸 것이다. 때문에 일부 전통 탱고를 지향하는 이들로부터 ‘탱고의 암살자’라는 비난을 받기까지 했으며, 1960년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마저도 그의 음악을 두고 너무 진보적이라고 깎아내렸다.



* 개나 소나 누에보

이제 본격적으로 <탱고 4.0>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오늘날에도 탱고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해서 <탱고 4.0>이라는 진화된 변종의 출현을 누구나 시도해보고 있는 시기라고 하겠다. 즉 개나 소나 ‘y nuevo tango’를 시도해보고 있는 중인 셈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은가 보다. 수많은 탱고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시도를 해 보지만 눈에 띄게 현격한 변화의 모습을 아직까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Gotan Project’라는 그룹의 음악이 어쩌면 <탱고 3.5> 쯤의 진화에 더듬이를 내밀고 여기저기 더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탄 프로젝트는 1999년에 결성된 탱고 음악 멤버로서 활동 근거지는 주로 프랑스 파리이다. 멤버는 탱고의 고향 아르헨티나 출신 에두아르도 마카로프(Eduardo Makaroff)와 프랑스 출신의 필리페 코헨(Plilippe Cohen Solal), 그리고 스위스 출신 크리스토프 뮬러(Christoph H. Mṻller)로 구성되어 있다. 첫 앨범은 2000년에 낸 ‘나는 고향으로 간다’ 쯤으로 해석되는 ‘Vuelvo Al Sur/El Capitalismo Foráneo’(싱글)이었고, 이듬해 ‘탱고의 복수’라는, 제목도 조금 이상한 ‘La Revancha del Tango’를 냈다. 이 음반은 1백만 장 이상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이들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고탄 프로젝트의  음악적 기반은 아르헨티나 탱고이지만 나름 그들의 탱고적 진화를 위해 비트가 강한 내용을 삽입하거나 전자음악을 사용하기도 하며 때로 형식 파괴적인 노력도 보여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2004년 내놓은 ‘DJ set’이다. 이 음반은 일종의 컴필레이션 음반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그 옛날의 아니발 트로일로(Aníbal Carmelo Troilo : 1914 – 1975)와 같은 전통적인 반도네온 연주자의 곡과, 누에보 탱고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피아졸라의 음악, 그리고 자신들의 음악을 겉절이 김치를 담듯이 함께 버무려서 말 그대로 리믹스라는 이름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후 2006년과 2010년에도 각각 ‘Lunático’, ‘Tango 3.0’이라는 음반을 발표했다.

 


* 영화음악으로...

이들의 음악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가끔은 들어봤던 것도 있다. 2004년 제니퍼 로페즈와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일본 영화의 리메이크 판 'Shall we dance?'의 춤추는 장면에서 사용되기도 했고, 그해 ‘탱고의 복수’에 있던 곡 하나는 영화 ‘Ocean's Twelve’에서도 마지막 장면에 사용되었다. 또 2010년에는 톰 크루즈와 카메룬 디아즈가 주연한 코미디 영화 ‘Knight and Day’에서 ‘Santa Maria (del Buen Ayre)’가 사용되었고, 어떤 곡은 이른바 미국판 연속방송극인 ‘Sex and the City'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의 음악을 들어본 느낌은 실제로 어떨까? 과연 <탱고 4.0>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덜 성숙한 더듬이로 탱고라는 커다란 코끼리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고 있는 <탱고 3.5>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높이 평가할 만한 노력들

고탄 프로젝트는 대략 네댓 장의 음반을 냈다. 하지만 다 사서 들어볼 필요까지는 없고  베스트 음반 하나 장만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간 가장 괜찮은 곡들이 이 한 장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베스트 음반의 첫 번째 수록곡은 SantaMaria로  'Shall we dance?'에 사용된 곡이다. 라디오 속의 음악이 음악 속에 나오게 하는 이중 구조를 지녔는데,  신디사이저를 이용해서 젊은 취향의 탱고를 지향하고 있다. 비교적  매스컴을 많이 탄 곡이라 조금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 번째 트랙의 Epoca와  여섯 번째 트랙의 Una Musica Brutal은 크리스티나 빌라롱가의 음정 틀린 듯한 졸린 목소리가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곡이다. 빌라롱가는 어쩌면 보사노바 음악을 노래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세 번째 수록곡 La Gloria는 현대적인 비트가 탱고에 섞이고, 리듬을 이끌어가는 반도네온과 바이올린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독특한 흐름을 지녔다.

다섯 번째 곡 Rayuela를 비롯해서 몇 곡은 곡 중간에 중이 염불 하는 듯한 내레이션을 집어넣어 새로운 맛을 주기도 하나 음악적 집중력을 높이는데 솔직히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곱 번째 수록된 Mi Confesion은 라디오 속의 목소리를 더빙처럼 넣고 다시 리얼로 나오게 하는 요즘의 통속적인 기교를 사용하고 있는 데다가 별 음악성 없는 랩을 중얼중얼 늘어놓고 있어서 음악적 완성도를 갉아먹는 느낌이 든다.

 

여덟 번째 곡 Perigro는 가장 전형적인 탱고 리듬을 지키고 있는 곡이 아닌가 싶다. 반도네온의 흐느낌이 바이올린의 지저귐과 놀고 빌라롱가의 음색과 잘 조화를 이루는 곡이라고 하겠다.

이 음반 수록곡 중에 아홉 번째 Triptico는 8분 26초에 이르는 비교적 긴 연주곡이다. 탱고의 도우에다가 통속적인 팝의 요소와 적당한 비트, 그리고 전자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묘한 소리들을 토핑으로 얹어서 구운 탱고 맛 피자의 음악이라고나 할까.


Strength to love라는 곡은 탱고라기보다는 아프리카 랩 음악에 가깝다. 따라서 탱고의 장르라고 하기엔 무리 아닌가 싶다. 뽕짝의 반주를 기타로 했다고 해서 그것이 컨트리 음악이 아니듯이 반도네온 연주가 있다고 해서 모두 탱고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수록된 곡은 'Last tango in Paris'이다. 이 곡은 이태리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라는 영화의 OST로 작곡된 것이다(주 1). 곡은 색소폰 연주자 Gato Barbieri가 만들었다. 이 곡을 마지막에 넣은 것은 아마도 감독과 작곡자에 대한 오마주의 차원인 듯싶다.



전반적으로 음반을 듣던 중 음향적으로 하나 아쉬운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반도네온의 소리가 구성지면서도 깊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이상하게 가늘면서 날리는 소리로 들린다는 점이다.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는 않으니 아무튼 그렇다고 치고.


 전체적으로 볼 때 고탄 프로젝트의 이러한 일련의 다양한 시도들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새로운 추구나 철학이나 문법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베스트 음반은 나름 들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노력들이 여기저기 충분히 배어 있다. 따라서 이들의 탱고는 대략 <탱고 3.5> 정도로 자리매김해주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2010년 이후 고탄 프로젝트는 새로운 것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그람시의 말대로 그들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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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1972년 제작된 마론 브란도와 마리아 슈나이더 주연 영화이다. 이 영화는 강간 장면이 실제가 아니었느냐는 논란과 함께, 외설이냐 예술이냐 라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영화이다. 프랑스에서는 제작 연도인 1972년 개봉되었지만 이태리에서는 1987년에 개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수입되었다.

한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명작으로는 1970년 제작된 '순응자'를 대표로 꼽는다. 이 영화는 뛰어난 건축학적 구도와 각종의 고증을 구현한 최고의 미장센으로 평가한다. 1977년 제작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명작 '대부'는 바로 이 영화의 오마주라고 한다.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





https://youtu.be/tqLh6rQqk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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