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ern Electric 316A
* 군사기술의 두 얼굴
군사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을까? 군사기술이 궁극적으로 활용되는 전쟁에는 공포, 전율, 살육, 폐허 등과 같은 역기능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런 역기능이 가슴 아프게도 군사기술이 갖는 목적의 순기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문명의 발전이라는 진정한 순기능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20세기만 예를 들더라도 총이나 대포와 같은 화기의 강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철강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노력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진공관을 사용한 애니악(Eniac)의 등장 및 발전을 통해 컴퓨터를 만들어 냈으며, 미국의 군사 통신망을 구축하려 했던 노력은 오늘날 인터넷의 모태가 되었다. 또 1935부터 시작된 영국의 레이더 방공망 구축 시스템과 전투기, 전폭기 레이더 시스템은 지금 하루에도 수 천편 씩 안전하게 뜨고 내리는 전 세계 항공시스템의 토대가 되었으며, 수 만 척의 선박에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316A라는 진공관은 바로 이 항공기 관제 시스템(지상 관제와 공중 관제) 가운데 공중 관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진공관이다. 다시 말해서 항공기에서 사용하는 레이더 시스템에 최초로 사용된 진공관으로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 항공기용 레이더의 개발
오늘날 레이더(Radar ; Radio Detecting And Ranging)의 기초를 마련한 것은 영국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35년 로버트 왓슨(Robert Watson -Watt)과 아널드 윌킨스(Arnold Wilkins)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과학단체는 전파를 이용해 전리층을 검출하는 방법을 응용, 작은 목표물을 검출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그들은 실험용 펄스 레이더로 약 30마일 거리에 있는 비행기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항공기의 금속 부분은 전파의 파장을 반사시키게 되는데, 이를 보편적으로 이용한 것이 곧 레이더의 원리이다. 다시 말해서 발사된 전파가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데, 이 되돌아온 전파를 검색해서 거리와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 레이더의 골자이다. 그리고 발사되는 전파는 서로 간섭하거나 중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시간 단위로 전파의 파장을 달리해 구분한다.
* 방공망의 구축
레이더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 정부에서는 마침내 1938년 영국 전 영토를 레이더 방공망으로 구축, 군사적 방호 네트워크를 완성하게 된다. 당시 이와 같은 지상 레이더는 6 MHz 통신 변조파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장치의 설치를 위해서는 대형 타워와 몇 톤에 이르는 장비를 갖추어야 했다. 따라서 전투기나 전폭기에는 결코 이용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1936년 항공기에 탑재할 수 있는 레이더를 개발하게 된다. 이때 부각된 점은 가벼운 중량과 적은 에너지 소비, 그리고 콤팩트 한 사이즈였다.
RDF(Radio Direction Finding) 개발팀은 결국 1-2m의 안테나를 사용하는 45 MHz 항공기용 레이더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 항공기용 레이더 장비의 핵심 부품으로 웨스턴 일렉트릭의 316A 진공관이 사용되었다. 레이더의 펄스 길이는 3 Microseconds이고, 횟수는 초당 100회 정도 반복된다. 한 펄스 당 출력은 약 몇 백 와트 정도.
316A 진공관을 이용한 레이더 장비는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 316A를 푸시풀로 구동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이때의 주파수는 200 MHz였다. 그런데 좀 의아한 대목이 있다. 영국의 군사 기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레이더 부품에, 그것도 핵심 부품을 왜 미국 진공관으로 사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영미 군사 기술 자료 교환 협정'을 맺고 있었는데, 아마도 마이크로 부문은 미국에서 맡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더 연구와 관련된 주요 부품 사용에 있어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316A 파워 앰프
이 진공관은 초고주파 출력관(UHF Power Output Tube)로 생김새가 특이하다. 마치 문의 손잡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른바 '도어 노브(Door Knob)' 진공관이라 불린다. 크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주먹만 하며, 알밤 모양을 하고 있다. 필라멘트는 토륨 텅스텐으로 제조되어 있어 점화하면 대단히 밝은 불이 들어온다. 자세히 보면 가느다란 세로 선을 동그란 플레이트 사이로 뽑아낸 후 스프링 장력을 이용해 위쪽에 고정시켜 놓았다. 플레이트의 재질은 탄화 니켈이며, 120° 각으로 긴 날개를 달아서 방열 효과를 높인 구조이다. 그리드는 새장처럼 조형한 뒤 고리로 고정했다.
이 진공관으로 앰프를 만드는 것은 좀 복잡하고 까다로운 구석이 있다. 우선 독특하게 생긴 덕분에 소켓을 쉽게 구할 수 없다. 천상 소켓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게 그나마 제일 낫다.
그리고 히터가 2 V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낮은 전압을 정확히 맞추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전압은 낮아도 전류량이 3.65A나 되기 때문에 대용량 정전압 회로를 구성해서 DC로 구동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것이다. 이 히터 부분을 다소 소홀하게 할 경우 험이 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출력을 보면 좀 놀랍다. 작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싱글로 제작할 경우 채널당 8W까지 낼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출력을 다 뽑을 경우 수명은 좀 짧아질 듯. 대략 70~80% 정도로 구동해야 마르고 닳도록 쓰지 않을까 싶어서 약 6W쯤으로 파워 앰프를 설계. 소리는 역시 직열 송신관 특유의 투명하고 깔끔하며 명료한 소리를 낸다. 게다가 전체적인 밸런스와 음악성까지 갖추고 있으니 모양 예쁘고 소리가 좋으니 금상첨화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