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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Sep 17. 2018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안 통한다”

        

 * 베끼고 본다     


옛말에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안 통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또 "무식한 데 소신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해지기도 한다. 적절한 지는 잘 모르겠으나 오디오의 설계 제작에도 이와 같은 사례들이 있다.      


진공관으로 오디오를 설계 제작하는 것은 진공관 내부 저항과 Gm, 증폭률, 전류량, 바이어스 전압, 그래프에 나타난 동작점 등 다양한 데이터들을 검토해서 철저하게 설계하는 하나의 과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개중에 보면, 이런 것들을 전부 무시하고 일본 사람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회로 설계를 아무런 검증 없이 베껴서 사용하고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외국인이 설계했다고 해서 모두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자세히 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형편없는 설계도 꽤 많다. 더 가관인 것은 베낀 것에다가 첨삭까지 해서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조차 이해가 안 되어 더 이상한 회로가 나오기도 한다. 하기는 이해하면 그대로 베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 게인이 맞아야 한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우선, 앰프의 완성도 측면에서 지켜야 할 이득(Gain)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파워 앰프의 일반적인 적정 게인을 25dB에서 30dB 정도로 본다면, 10dB이나 50dB이 되는 앰프를 만드는 경우가 그런 격이다. 심한 경우는 100dB도 넘게 만든다.   

   

이런 것들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과거 극장용 앰프 설계를 그대로 베낀 데서 발생하는 오류이다. 극장용 앰프는 영화 필름 옆에 음성 띠가 있는데 이것은 미세한 음향 정보를 담고 있다. 때문에 100dB이 넘어야 제대로 증폭이 된다. 즉 지금의 오디오 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91B, 1086 등과 같은 회로를 베낀 오디오가 여기 해당된다.      

Western Electric 91B


Western Electric 1086


프리앰프는 게인이 10~15dB 정도면 적당하다. 하지만 이것이 0dB이거나 30dB을 넘으면 곤란하다. 게인이 낮으면 볼륨을 한없이 올려야 하고, 게인이 너무 높으면 볼륨을 아주 조금만 올려도 커다란 음량이 나기 때문에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는다. 뮬론 패시브 프리와 같은 영역도 있기는 하다.   

 

사실 볼륨만 올리고 내려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뭐 번거롭더라도 그렇게 쓰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게 그렇지 않다. 게인이 너무 낮아서 볼륨을 너무 올리면 입력 신호가 덜 증폭돼서 음의 골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이때는 음악이 맥 빠진 소리가 되거나 잡음이 더 많이 증폭된다.     

 

반대로 게인이 너무 높으면 프리앰프나 포노 이퀄라이저의 노이즈까지 대량 증폭해서 이른바 지글지글 기름 튀기는 소리 비슷한 것이 들리고,  화이트 노이즈라고 불리는 오줌 싸는 것 같은 '쉬'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 바이어스 전압     


둘째 진공관 회로 설계를 할 때 300B나 211, 845 등과 같이 출력관 바이어스 전압이 깊은 경우 2단 증폭을 하게 되는데, 이때 첫 번째 스테이지의 진공관은 바이어스 전압이 낮아도 되지만 두 번째 스테이지 진공관은 비교적 바이어스가 깊어야 한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 일차 증폭한 스윙 전압이 두 번째 스테이지 바이어스에서 감당하지 못하고 찌그러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두 번째 스테이지 바이어스가 300B 같이 80V나 되는 너무 깊은 것을 사용하면 폼은 그럴싸하겠지만 1차 증폭된 스윙 전압이 낮아 두 번째 스테이지를  드라이브하지 못한다.           

RCA 845


 * 트랜스 결합 프리앰프의 오류   

  

셋째 트랜스포머를 사용하는 프리앰프의 경우, 사용할 진공관의 내부저항을 먼저 파악하고 그 내부저항이 어떤 특성을 발생시키는지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오래된 진공관이라거나 좋은 진공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트랜스를 결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유럽계 진공관으로는 Ba, 미국계 진공관으로는 27 같은 것으로 프리앰프를 만드는 사례를 가끔 본다. 이 진공관들은 기본적으로 전류량이 적고(최대 전류 : Ba 3mA, 27 5mA) 내부저항도 꽤나 높으며(Ba 25K Ohms, 27 9K Ohms) 증폭률도 낮다(Ba는 15, 27은 9). 때문에 트랜스 결합형 프리앰프에는 사실 그렇게 적절한 진공관은 아니다.      

Siemens Ba

왜냐면, 전류량이 적으면 아웃 트랜스의 충분한 구동이 어렵고, 증폭률이 낮으면 인풋 트랜스를 또 붙여서 이단으로 증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인풋 트랜스에서 전류를 흘리지 않고 권선비로 증폭하기 때문에 우선 고음과 저음이 처음부터 깎이는 현상이 발생하며 음이 때로 탁해지는 사례가 많다. 반면 인풋 트랜스를 붙이지 않는다면 아웃 트랜스 손실률이 진공관의 증폭률을 상쇄시켜서 앞서 언급한 0 게인이 된다.   

   

RCA 227

  또 이들 진공관은 내부저항이 높기 때문에 아웃 트랜스의 일차 측 임피던스가 높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 트랜스포머에서 일차 측 임피던스가 높다는 것은 고음과 저음에 반드시 슬로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음과 저음이 또 한 번 깎이는 악순환이 된다.    

  

이렇게 되면 고음과 저음 손실이 발생해서 중음만 과장되는데, 이것을 '독특한 소리'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오디오가 독특한 소리를 낸다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친 이상한 오디오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디오는 우선 기본에 충실하고 그다음에 취향을 따질 일이다. 이상한 취향을 먼저 따지고 기본을 버린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트랜스형 프리앰프에 적절한 진공관은 몇 가지 있다. 전류량이 많고 내부저항이 낮은 진공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독특한' 프리앰프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물론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화장실에서도 낚시가 되는데 왜 안 된다는 거야?" 하고 주장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안 통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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