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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Oct 09. 2018

"세수하고 나온 미녀의 해맑은 미소"

LK4112 Power Amplifier


"세수하고 나온 미녀의 해맑은 미소"

Valvo LK4112 Single Ended Power Amplifier



*숯불에 소리를 굽다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자칭 타칭 당대 '고수'라는 회로 설계자와 제작자들도 삼극관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가까운 일본에서만도 이사무 아사노, 고우이치 시시도, 마사미츠 야사가와, 와다나베 등이 그들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1955년 300B 파워 앰프를 처음 자작하였던 Alvin Bryant도 40여 년 동안 3극관에만 매달려 왔고, 일본계 프랑스의 제작자 Jean Hiraga도 기회있을 때마다 삼극관을 극찬해 왔다. 그는 지금도 송신관 845 앰프를 주력기로 사용한다고 들은 바 있다.


아무튼 3극관의 매력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나는 사실 이렇게 느낀다. '3극관은 직열이기 때문에 고기를 숯불에 구워먹는 맛이고, 다극관과 같은 방열관은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워먹는 맛'이라고 ...

이것은 그냥 비유한 아니라 실제 진공관의 원리를 따져보면 딱 맞는 해설이다. 즉 직열삼극관은 필라멘트에 바로 불이 들어와 전자가 직접 튀어 나가는 방식이고, 방열관은 필라멘트 위에 프라이팬라고 할 수 있는 캐소드를 씌워 만들기 때문에 전자가 프라이팬에서 튀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 지존의 진공관들


삼극관 가운데 미국계 출력용 진공관으로는 252A, 300B 등을 지존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 두 가지는 후기 발전 과정에서 약간은 다른 계보를 가지고 있다. 252A는 VT2 - 205D - 252A - VT25 - 211 - 242A와 같은 송신관 계열로 발전한 경우이고, 300B는 VT1 - 101D - 104D - 275A - 300A - 300B와 같은 오디오 및 레귤레이터 용 계열로 발전한 경우이니 약간은 다른 면이 있기는 하다.


지금 252A와 205D는 정말로 구하기 어려운 지존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음질에서도 그런 지 안 그런 지는 더 따져볼 일이지만 아무튼 희소성 때문에 그런 위치에 이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300B도 나름대로 대중적인 것으로는 적당하게 구하기 쉬운 이른바 '적당한 지존' 쯤의 위치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 티없이 맑고 고상한 소리


한편 유럽계열로는 하도 날고 기는 것들이 많아서 딱히 어떤 것이 지존이니 뭐니 하기가 어렵다. 일본 사람들 때문에 가격이 천정부지가 된 지멘스 Ed를 지존으로 꼽는데, 사실 이것도 음색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과장된 면도 없지 않다. 그리고 '적당한 지존'으로는 AD1, Re604, Da30, Px4, LK시리즈 등을 꼽는다. 이런 유럽관들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을 제작해서 들어본 바에 따르면, Ed는 빠르고 정교한 맛, AD1은 약간 우수에 젖은 듯한 음색, Re604는 대단히 여유로운 소리, Da30은 약간 두루뭉수리 하지만 힘이 좋은 느낌, Lk시리즈는 깔끔하고 고상한 듯한 소리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랜만에 Valvo LK4112로 싱글 파워앰프를 만들었다. 본래 이것은 E406N이라는 송신관 류에서 발전한 진공관인데 계보상으로는 Da가 조상이다. 소리의 성향은 Ed와 Re604를 섞어놓은 듯하다. 빠르고 정교하면서도 여유롭다. 출력은 4W 정도. 초단으로는 Northern Electric의 403B를 사용했다. 그럼 만든 앰프의 소리에 대해서 좀 뻥을 쳐 볼까?


'마치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른 날 아침

세수를 하고 막 나온 미녀의 미소처럼

티없이 맑으면서도 고상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LK시리즈는 LK430, LK460, LK4110 등이 있는데. 이들은 2W 급으로 LK4112의 절반 수준이다. 이후 제조된  LK4200, LK4250, LK4330, LK7110, 7115 등은 완전한 송신관의 길을 간다. 때문에 출력은 약간 더 나오지만 소리의 질은 LK4112를 절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어쩌면 빵 덩어리는 큰데 내용물이 부실한 찐빵같다고나 할까.



* 역사 속으로 사라진 Valvo


Da, LK4112, AD1, Ed 등 이른바 명관을 만들어냈던 발보라는 회사 이야기를 좀 덧붙일까 한다. Valvo Marke는 1926년 설립됐다. 당시 토륨 텅스텐 필라멘트를 채용한 Re064, Re144 등 수신관을 만들었고, 옥사이드 코팅된 Re152라는 수신관을 만들어서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하켄크로이츠 문장이 찍힌 군용 진공관을 생산했고 1960년대까지 명성이 자자했다. 당시 출판되었던 독일의 기술 잡지 'Funkschau' 'Funktenik' 에서는 이들의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발보는 실제 1926년에 설립되었지만 1927년 독일이 세운 필립스 독일 지사와 기업 합병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회사는 오랜동안 자사 이름 Valvo를 사용하다가 1990년 필립스 본사에서 사용을 금지시킴으로서 'Philips German Division' 이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지멘스와 텔레풍켄과 어깨를 나란히 해온 발보는 20세기 역사의 뒷 페이지로 사라졌고 지금은 컴퓨터 부품과 반도체를 생산하는 전혀 다른 회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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