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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Oct 25. 2018

누가 누구와 외로움을 나누는가


 누가 누구와 외로움을 나누는가 / 김선호


수많은 차들이 수없이 지나간 다리 밑의  서늘함으로부터 하루는 어둠을 타고 돌아온다

간이역 머무는 곳으로 초저녁 달빛 매고 내려오는 등산객과 거대한 콘크리트 구멍 속에서 불빛 등지고 나오는 연인들이 모였다 흩어진다

그 누구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 전철 안에는 혼자서 음란하고 불경한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는 투렛증후군 (tourette's syndrome) 환자가 타고 있고 환승역 역사 안에는 정신분열 양성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천국으로 같이 가자고 시도 때도 없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

그들은 계단 중간에 엎드린 노숙인에게는 절대로 천국에 같이 가자고 하지 않는다


밤은 또 다른 이별이 또 다른 만남을 데리고 오는 시간

술은 방울을 흔들며 귀신을 부린다

박제된 인생과 혼돈의 현기증이 죽은 날파리 가득 들어있는 가로등 그림자가 된다

노선버스는 일찍 끊어지고 택시는 날개를 달고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현기증

적막을 가르는 차가운 개천 물 소리가 후미진 방 흔들리는 형광등 불빛이 되고 눈 못보는 이 셋  모여 읽지 못하는 편지를 뜯어보며 하루를 토한다

화초 심은 이유를 묻지 말라는 선인의 말이 편지에 담겨있다


도시의 소금은 짠 맛을 잃어간다

사람은 유명해지는 것을 두려워 해야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人怕出名 猪怕壮)는데 삼겹살과 소주,그리고 뒷풀이 치맥  때문에 돼지 대신 살이 충분히 찌고 있다

두려워해야 할 일이 점점 더 없어져가고  있는 것은 항상 이틀 동안 어망을 말리고 있기 (两天晒网) 때문이며 시체가 된 몸을 데리고 죽는 연습을 하러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재주없이 나이만 먹는다고 눈만 뜨면 투덜대는 동안 도시의 마천루 아파트와 대형 백화점은 사치를 다투고 있고  스모그에 뒤덮인 도시는 병든 신선을 더 늙게 한다

밤도 길고 꿈도 길다

누가 누구와 외로움을 나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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