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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20. 2017

오늘 신을 믿지않는 성직자가 되다



어느 올레길/ 김선호


때로 낯선 아침에 기대어

괘종시계가 횡설수설 하고 있을 때

무지개 뜯어먹고 사는 바람이 지나고

구름 뜯어먹고 사는 하늘이 스쳐

유성의 긴 꼬랑지 잡고 날아가다가

잠깐 한눈 팔아

서귀포 수평선에 떨어진 것 아닐까

이제 느리게 걷고 싶다


오늘 신을 믿지않는 성직자가 되어

물뱀자리와 사자자리 쳐다보다

쇠소깍 위로 흐르는 느린 구름 아래 서면

흙먼지 이는 울퉁불퉁한 느린 길이 보이고

검은 모래 길이 또 가슴에 열리면

그런 길 천천히 걷고 싶다


낙엽은 겨우내 눈 밑에서 숨쉬다가

이제 마른 향기를 내기 시작한다

그 마른 향기와 쪼가리 햇빛 속에

젖가슴처럼 먹물 번진 섶섬 절로 보이고

구름 제 갈 길로 흩어진다

천천히 걷고 싶은 이유

어쩌면 그 곳은 느린 구름 아래

신이 먼저 느리게 걸어간

서귀포 어느 올레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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