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않는 새 / 김선호.
냉장고에서 아무 일도 하지않고
시들어 자글자글 말라버린 토마토처럼
뒤웅스럽게 늙어죽을 때까지 살면
매일 몸도 아프고
아마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지도 못할거야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먼지쌓인 액자처럼
허공에 덩그마니 걸려있는
새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한 100살까지는 살고 싶을지도 몰라
노루잠 자다가 개꿈 꾸는걸까
그것은 버려진 유기견의
누린내 나는 또 다른 꿈일거라는 것
주민등록증 뒤의 가짜 주소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게
그 증거일까 아닐까
늘어난 어깨의 인대를 따라
취바리 쓰고 누구도 알 수 없는 춤추면
가뭄에 콩 나듯 날지 않는 새를 만날 수 있어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꿈이 푸석거리고
기차는 경적 소리도 없이
모래 속으로 흘러 들어가
검은 고양이가 바라보는 창문 밖에는
장난감같은 흰눈이 내리고 있고
경부고속도로를 종이처럼 접어서
첫 번째 구김이 있는 곳에
날지않는 새가 숨쉬고 있었지만
이제 무당이 진혼해줄 귀신도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