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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20. 2017

너의 방에서 닭이 울고 있다

성산의 빛 / 김선호


퇴근하는 가방에 거추장스러운 하루가 담겨서 따라오고 빗물에 아릇아릇 튀어오르는 기억은 배추 잎에 붙은 달팽이가 되어 느릿느릿 사라진다

잃어버린 저녁이 삼켜버린 강의 너울

여름이 우거진 시간에는 기둥이 비뚤어진 집에 앉아 너의 방에서 닭이 울고 도시가스 배관에 붙어 있는 시시콜콜하고도 너절한 이야기들은 흰 슬리퍼를 질질 끌고 있다 그래도 책상을 잘 정리하고 나면 가슴 속에 노란 병아리처럼 표선의 가시리 유채꽃이 핀다


처음에는 아주 쉽게 시작했다 처음은 늘 타인에 의해서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시작은 절반이라는 거짓말에 잘 속아넘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선원은 힘주어 그물을 올리지만 자리돔을 제외하고 그물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네가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은 법화사의 넓은 뜰에서 산다 그 뜰로 가는 동안 경계심이 가득한 동물들을 수없이 만난다 또 경계심이 전혀없는 동물들이 경계심 많은 동물들을 끝없이 잡아 먹고 산다


어느 날은 신음하는 바다를 건넌다 석양을 채집한 석청 사냥꾼은 마라도 절벽에서 철쭉의 꿈을 키운다 사냥꾼의 밧줄에 매달린 냉장고에는 식은 밥이 있다 찬밥은 전자레인지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나지만 하루 종일 겉도는 선풍기는 마실 온 더운 바람을 데리고 놀 뿐이다 사랑이 다시 태어난다는 운명은 예언되고 있지만 꼭 맞는 것도 아닐 껄  눈을 떠 보니 우리는 성산봉에 핀 풀꽃의 등을 아프게 밟고 서 있다  

거기 또 서 있는 그림자의 하루


그래도 그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세상에 처음 바다 위로 뜨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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