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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06. 2017

촉촉한 젖가슴은 가을이 아니다

모자를 쓴 여인

가을의 언어 / 김선호


1.

알 수없는 언어가 방안 가득 나열될 때 밤은 수술을 드러내고 향기를 맡는다 뱀의 혀가 된 암술은 끈적이는 웃음을 노래에 버무려 밤안개 속에 뿌리고 꽃은 지고 있다 천천히 단풍든 가을은 꽃의 색을 갈아서 또 아침을 만들지만 그 아침은 젖어있다 촉촉한 젖가슴은 가을이 아니다 슬픈 계절은 꽃을 팔고 있지만 이미 향기는 바닥에 말라가는 낙엽을 닮고 있다 낙엽은 차가운 밤 공기와 속닥거리며 자신의 색을 고른다


2.

개에 물린 이빨 자국을 세고 있으면 그림자가  나이를 세며 다가온다 억새 무너진 자리에 또 다시  그림자가 들어서고 바람은 잠을 청한다 개천은 하늘이 버린 색을 담아 흐르고 살찐 잉어는 가을을 뻐끔대고 있다 공터에는 바람 빠진 축구공이 나뒹굴고 수크렁은 빛을 받아 강아지풀 보다 다섯배나 많은 털을 고르고 있다 산책하는 노인의 긴 그림자가 물 위로 늘어진다 아까부터 떨어지고 싶어하는 단풍잎이 드디어 하나 떨어진다 떨어지지 못한 잎은 쪼그라지고 말라 비틀어진 언어를 늘어 놓는다


3.

멀리 모자를 쓴 여인이 다가온다 길을 따라 모자가 지나간다 잔영은 머릿속에 남는다 모자가 남고 하얀 희망이 남고 검은 리본이 남는다 낮은 저음을 좋아하는 노래가 들려올 때 강물은 흐르고 사랑의 속삭임이 물의 노래를 부른다 밟아 바스락거리는 가을이 다가오고 또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다 거울에는 이끼가 끼고 구석에는 주름이 생긴다 아름답지만 또 다른 아름다움을 버리는 것이 가을이 배우는 목 쉰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것 모두가 아름답기에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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