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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Oct 29. 2017

잃어버린 시간의 사랑

오늘은 별이 뜨지 않는다



망각의 시대 / 김선호


1.

안부를 묻는 우체통은

눈과 비를 맞고

또 뜨거운 햇볕에 그을리며 살지만

때로 젖무덤 만큼이나 그립고

달보다 먼저 밤을 맞아

빛나는 별처럼 존중된다


2.

어떤 때는 낮술 먹고 졸다가 잠들고

가끔 문법이 틀린 언어를 나열한다

낡은 시간은 중고 시계 위에서 멈춰 있으며

토마토를 파는 고단한 다리는

파스가 몇 겹 붙여져 있다


3.

동백아가씨와 섬마을 처녀는

이상한 여행을 떠나고

찌그러진 사이다 캔이 발에 차인다

아침 인사를 하는 짙은 안개 너머

책상에는 글자가 하나도 없는 편지가 놓여있다

낡은 잡지에도 글자가 사라지고

엉덩이만 남았다


4.

계단에 나열된 물건들은

어느 시대의 가슴 아픈 유물일까

배달 늦은 짜장면이 철가방에서 나오면

퉁퉁 불어서 비벼 지지도 않아

떡처럼 한덩어리가 되고

속상한 가슴도 떡진 짜장면이 된다


5.

십전대보탕을 끓인 약탕기는 튼튼해지고

약 냄새를 마신 하늘은 오줌이 마렵다

아무도 쓰지않는 재봉틀은

지나간 시간을 꿰매고 있지만

가을우체국 주변에서 서성이다가

외로움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서늘한 가슴에

오늘은 별이 뜨지 않는다


별이 뜨지않는 밤에는 어떤 벼개를 베고 자야 할까?
발 맞춰서 하나 둘 하나 둘  ...
나 뚱뚱하게 찍었지?!
영혼을 잃은 물건들. 나는 어느 시대의 유물일까.
하나 입어 보시든가
목 빠지십니다요.
삼처넌이라니깐. 뭘 물어봐 싸. 거기 써있구만!
이 아저씨 뭘 그리 골똘히 보고 계신겨?
이 시계를 사는 순간 그동안 정지해 있던 어느 시절의 시간이 다시 가기 시작해요.
지나간 시간을 다시 꿰매고 싶으시면 하나 장만해보셔도 좋을 듯...
가을은 다리 밑으로 지나가고 강물은 시간을 데리고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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