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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20. 2017

말을 잊은 아버지가 바람을 노래하고 있다

파도가 높은 것은 / 김선호


서귀포 앞바다 파도가 높은 것은

그 바다에 어머니가 흘린 눈물이

두 배나 많기 때문이다

연두빛 파래가 파랗게 웃고 있을 때

어머니 숨비 소리 주상절리에 꽃으로 피고

그 눈물은 조류 따라 흘러 간다


서귀포의 바람이 센 것은

그 언덕에 아버지가 버린 한이

두 배나 많기 때문이다

검은 이끼로 가라앉은 아픈 역사 속에서

새로 꼰 집줄 얹은 지붕에 앉아

말을 잊은 아버지가 바람을 노래하고 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거리에서

가끔씩 우뚝 서 있는 하루방들은

단조롭지 않은 이 땅의 과거가 빚어낸

한 때의 영화와 슬픔과 불안의

잃어버린 뒷장일지도 모른다

또 잊지 말아야 할 언어일지도 모른다


이제 현무암 속에 숨은 따뜻한 숨결

시리도록 푸른 쪽빛 하늘

헤아릴 수 없는 눈물 삼킨

코발트 빛 숨을 쉬는 바다가 눈을 뜬다

우리는 서귀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어머니 아버지의 그리운 그림자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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