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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20. 2017

어떤 사진을 찍어 추억이라고 하는걸까

매일올레 시장 / 김선호


작은 골목길 하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생선 비린내 흘러내린 시장을 걸으며

아이는 질척거리는 바닥에서 웃음을 줍는다

채소 가게 색을 맞추는 대정의 당근

할머니 주름진 손도 잊는다

반찬 가게 유리 덮개 위에는

밤을 도와 따라온 파리가 공기를 비비고

붉고 매운 양념에 마농지는 짧은 다리를 뻗는다


늦은 오후가 되면

흩어져 있던 오메기떡들 삼삼오오 모여

할인 가격 이마에 붙인다

정육점 붉은 등은 늘  흑돼지 냄새 킁킁대며

약간 비릿한 홍등가를 닮아가는 모습

배 뒤집은 제주 고등어

좌판의 나무 향을 천천히 배우고

가장자리 녹슨 못은 붉은 고개 깊이 묻는다

가슴 넓은 광주리에 옥돔이 몸을 말리고 있다


가장 무심한 심사를 가진 자들

그들은 신발가게 슬리퍼일지도 모른다

누가 지나가든 말든

아무 표정도 아무 말도 없다

잔뿌리를 흩어놓은 대파

핏기 잃고 표정 잃은 어제의 얼굴로

귀퉁이에 시커먼 멍을 안고 사는

무표정한 형광등을 닮아가고 있다


올레 시장에는 무엇을 가위로 잘라

지나가는 시간을 예쁘게 붙여 놓을까

횟집의 알록달록한 차림표와

나란히 붙은 빛 바랜 주인의 사진들 속

수 많은 사람들의 미소가 정지해 있다

어떤 사진을 찍어서 추억이라고 하는 것일까

울어버린 기억도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발길 끊긴 어둠에도

천혜향의 향은 아름다운 하루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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