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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26. 2017

수학자습서에 답안지가 없다

목쉰 강아지 울음은...

수학 자습서에 답안지가 없다 / 김선호


늦여름에 진 꽃잎은 이미 흙이 되고

식탁 위에 희미한 무늬로 남아있다

하얀 도자기 그릇이 만나는 푸른 잎의 기억은

열무국수의 알싸하고 달콤하고 새큼한 맛

젖가락 사이에 낙엽으로 떨어지고 있다

차가움의 살얼음이 입 안에서 녹을 때

갑자기 뒷머리가 찡긋거리고

서리내린 눈동자가 반짝인다

부스러져 버린 마른 이파리들

바람의 여행을 떠나고

계절은 붉은 입술에서 붉은 볼로 옮겨간다

가끔 부어서 따갑고 아픈

목 쉰 강아지의 울음은  덤이다


낙엽을 뒤적이는 소리

그것은 시간도 여행을 떠나는 소리

버스는 문을 닫고 무심한 길을 떠난다

차가워진 바닥에 누워있기 싫은 먼지가

버스 꼬랑지를 잡으려고 뿌옇게 따라간다  

저수지 옆 언덕을 오를 때

수면은 주름이 잡혀 쭈그러지고 있다

배고픈 까마귀가 깩깩 거릴 때

바람은 더 심하게 불고

구름은 푸른 하늘의 문을 닫고 들어앉아 버린다

아스팔트 옆에 붙은 빵집을 지날 때

너울거리며 다가오는 계피향  

뜨거운 사과파이의 모락 거리는 김이

문을 열고 나서면

턱을 괴고 있는 손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손톱에는 별이 내려 앉고 있을 것을


지붕이 빛을 부르고

파도 뒤로 알레그로의 속도로 포말이 따라온다

포말을 쳐다보는 눈이 있다

왜 좋아하는 지

왜 사랑하는 지

알맞는 단어를 발견하지 못한 눈들은

그저 손만 맞잡고 바다를 바라 보고 있다

겨울은 답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가끔 되돌아보며 성실한 답변이 필요하다고

갯바위에다가 철썩거리고 있다

본래 우리는 대답하지 않아도 무방한

잠든 수수께끼 속에서 웃고

또 가끔은 울면서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의 또 다른 언어이거나

어쩌면 답안지를 잃어버린

수학 자습서같은 것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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