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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Dec 01. 2017

메리 크리스마스 버스 별곡

안드로메다 전용 차선

메리크리스 마스 버스 별곡 / 김선호


달달거리는 것은 유리창 만이 아니다. 내리는 발판도 떨고 천장에 매달린 여러개의 빨간 손잡이도 떨고 바닥에 딱 붙어 엎드려 있는 도사견 대가리만한 히터도 달달 떨고 있다. 미인 앞에 서서 가슴을 달달 떨지 않아도 버스를 타면 저절로 달달 떨게 된다.

살아가는데 가슴 떨리지 않는 시간이 계속된다면 삶은 그저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같지 않을까 싶다. 그럴 때 365번 째 행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충분히 달달 떨어주니까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창 밖을 응시하면 별도 보이고 달도 보이고 유리창에 반사된 사람도 보인다. 떨리는 내용이 다르다고 토달면 안타면 된다.


버스는 늘 앞 자리에 앉은 이의 뒷통수를 보고 앉아야만 하기 때문에 두상 연구에는 아주 적절한 차종이다. 하지만 백날 봐야 뭘 알아야 면장이라도 할텐데 개뿔이나 아무 것도 모르니 그저 의미 없는 눈동자만 앞 사람  뒷통수에 꽂혀 있다. 일준이 엄마처럼 바글바글 볶은 아지매 머리, 치렁치렁하게 긴 생머리, 노랗게 물들인 데서 까만 머리가 새싹처럼 삐져나오기 시작한 머리, 웨이브가 굵은 머리, 그도 저도 아니면 지글거리다 떡진 머리 등등 다양하다. 또는 헐렁하게 빠져버린 대머리, 촘촘하고 새까만 머리, 모자를 푹 눌러 쓴 머리, 꼬이다 갈린 머리가 있기도 하다.

하나, 아는 것일 수도 있고 개뻥일 수도 있는 것도 있다.  뒷통수 보면 가마가 두 개인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 장가든지 시집이든지 두 번 간다고 예전에 어른들이 놀렸다. 한 번 밖에 못갔다면 필히 다른 한 번은 또 다른 가슴 아픈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버스 천장 옆 쪽으로는 광고판이 눈 높이로 잘 배열되어 있다. 성형 광고, 학원 광고, 한의원 광고 등등. 성형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야하고 학원 교육이 자본의 세습을 돕는 교육의 동생이라면 열심히 계층  유지를 위해 다녀야 할 것이다. 그러다 잘 안되면 한의원 가서 총명탕 닳여 마시고 말이다. 이 버스가 지나가는 우울한 거리에는 총명하지 않아도 자본은 결과적으로 총명하게 해주기도 한다. 이제 개천에는 용이 살지 않는다. 게다가 개천에서 용난 사람 만나면 개천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오는 동안 충분히 떨었기에 버스에서는 떨지말고 가고자 하는 행성까지 따뜻하게 갔으면 좋겠다. 도사견 대가리만한 히터 바로 윗자리에 앉아서.  마치 그들을 위하는 것 마냥 말만 지껄이고 있는 게 때로 미워지기도 한다.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내리지 않으면  다음 번에 확 그냥 부가 비용을 더 청구하겠다고 겁주는 방송이 가끔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저 뭐 그러려니 하고 타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듣고 가당찮다고 생각하고는 그냥 내려 버리면 다음 번 승차 때에 대가를 확실히 치르게 된다. 뭐 그다지 큰 비용은 아니지만 자기들 편한대로 만든 문법에 적용시켜서 기분 살짝 나쁘게 하는 경우이다. 설계할 때 좀 잘하지.


시내 버스는 안드로메다로 가는  전용차선을 달린다. 엄청나게 밀리는 토요일 오후라면 정말 해피한 교통 수단이다. 역사를 제외하고는 컴컴한 지하 세계에서 전철을 열심히 타고 달려와 밝은 지상 세계로 나오면 즐비한 버스로 환승할 수 있다. 느낌에 따라 환승은 '뱀파이어의 환생'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주당의 귀환'일지도 모른다. 낮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밤에도 휘황찬란한 네온과 가로등은 마음마저 들뜨게 한다. 버스에게서 느림의 철학을 배운다. 직선 거리로 10분이면 갈 곳을 여러 행성을 들르기 위해 휘휘 돌아 한 시간 쯤 뒤에 내려주는 노선도 있다. 가끔 멀미가 나기도 한다. 어차피 생각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멀미를 하는데 뭐 몸이 멀미를 좀 한다고 그렇게 큰 대수일까 싶다.


안드로메다로 가는 버스는 오늘 페르세우스 자리를 들렀다가 갈 모양이다. 아무튼 지금도 달달거리며 버스는 달린다. 그래서 가슴이 달달 떨린다.


Merry Christm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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