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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Oct 29. 2017

창을 통해 피사체를 보는 이유

이원화된 존재의 이질성과 공간

창을 통해서 피사체를 보는 이유


같은 공간에 있지만 창이라는 투명한 벽으로 인해 공간은 서로 다른 공간으로 나뉜다. 따라서 이중 공간의 느낌을 둘 다 느낄 수 있고, 한편으로 내가 위치하고 있는 공간에서 창을 통한 건너편을 바라보는 공간을 객관화할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극장에서 화면을 통해 영화를 보는 것과도 비슷한 공간 속의 공간 구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한 공간에서는 내가 다른 피사체와 섞여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기 쉽다. 그러나 격창을 통해 다른 피자체나 그 피사체의 움직임을 볼 때 오히려 내가 위치한 격리된  공간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그림을 감상할 때 피사체를 보며 자신의 감성적 동력이 느껴지는 것과 동일한 이원화된 존재 현상이라고나 할까.

한편 내가 위치한 창 안쪽의 공간에서 창밖의 공간은 미지의 대상이면서 때로는 꿈의 실현성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앵글로 창밖을 추구하는 꿈은 아름다운 현상의 다른 모습이며 희구해온 현상의 정지적 구현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공간의 시간적 이질성이 존재한다.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 창 안쪽의 공간에서는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 들고, 창밖의 공간에서는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앵글에 담으면 창 안쪽은 정지한 시간 속에서 기다리는 것, 창 밖은 시간이 흐르는 속에서 한 장면을 잡아내는 그런 상황이 된다.  Vice a versa도 가능하다.

또 다른 이유는 이중적 표현에 있다. 단순히 앵글에 잡히는 피사체나 공간은 1차원의 공간이다. 그러나 창을 두고 잡히는 공간은 창 밖의 1차원 공간과, 유리창 프레임 안쪽의 2차원 공간이 동시에 잡힌다. 따라서 1차원의 공간에서의 분위기와 2차원 공간에서의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역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두 공간은 때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결국 이렇게 창을 통해 보는 습관은 표현의 다중성을 느끼려는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이 서노의 조금 모자란 생각의 단면이다. 그리고 이렇게 긴 쌩구라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창을 통해서 보면 좀 색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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