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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03. 2017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은 여인은 옷을 벗어 말리고 있다

공허함의 노래



밤의 이야기 2 /  김선호


1.

계속 이어지는 음률은 공허함의 빈자리에 앉는 벽돌들이다 벽돌들에는 금이 가 있고 그 속에 시간이 들어앉아 있다 그 시간들은 때로 노래하고 연주하고 또 거미줄을 타고 가슴을 들여다 본다 가슴에는 무거운 돌과 가벼운 돌의 치환이 일어난다 아무도 듣지않는 낡은 이야기는 바닥에 깔려 신음하지만 슬픔을 구슬처럼 꿰어놓은 노래는 한 줄로 서있다 낮에 우체부의 손에서 전해받는 새로운 슬픔들 그들이 밤이면 방안 가득 채워지고 가벼워진다 순서대로 다가오는 공기들은 차례로 흔들린다


2.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은 가수는 벌거벗고 옷을 말리고 있다 배에 꿈을 싣고 또 꿈을 난파시키고 배는 가라앉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에서 깊은 바다의 흐느낌을 가져왔다 또 다른 고동 껍데기에서 나오는 바다와 헤어지는 소리

거기에는 밤이 오고 또 하나 둘 씩 불이 켜진다 불빛 아래 말수가 적은 배 한 척이 자작나무를 태워서 진액을 바른 오크통을 들여다 본다 도수가 높은 알콜의 향을 배우는 밤은 잊어버린 달의 젖꼭지를 빨고 있고 탈색된 머리카락 사이로는 차가운 바람이 드나든다


3.

눈을 뜨는 밤거리에서 각자의 가방 속에 넣어 데리고 가는 외로움

여기저기 버려진 담배꽁초에 하루의 고뇌가 니코틴과 타르처럼 누렇게 붙어있다 느리지도 분주하지도 않은 청소부의 손에 쓸려나가는 꽁초

그들은 아쉬운 눈초리로 뒤를 돌아보고 있다 뒤돌아 본들 남은 기억도 지워지고 있는데 무슨 의미를 가지려는 것일까 그것이 아픈 상처일 수도 있는데 왜 돌아보는 것일까 하기는 그게 어쩌면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고 또 내쉬는 희뿌연 연기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4.

가로등의 가선진 눈초리가 길어지고 있다 쪽문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여인의 허망한 희망은 밤그늘에 묻히고 밤바람은 또 다시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이국의 조각 돌바닥이 말을 섞을 때 오리온자리를 따라가는 적막들

그 적막들은 수많은 화살이 박힌 사랑의 신음을 담고있다 시간은 늘 흐르는 화살을 오리온자리에 쏘아대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 별이 되거나 그리워하다 별이 되거나 별은 어차피 사랑의 화살에 맞아죽은 하늘의 나침반이기도 하다

밤은 그 별들이 숨을 쉬는 시간이고 또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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