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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Nov 10. 2017

늘 그렇게 너는 내곁에 있다

가을의 향기


여행가방 5 / 김선호


   단풍이 조금씩 내려 앉으려 넓은 잎들의 끝은 초록을 천천히 버리고 있다. 버려진 초록은 건조한 흙 위에 누런 기다림으로 부서진다. 가지 사이를 넘어온 바람은 차가워지고 밤그늘 아래 떨어진 빛의 짜투리들이 바닥에 퍼더앉는다. 덩치 큰 멧새의 객적은 짝 부르는 소리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공터를 공허하게 울리고, 목청 작은 풀벌레 소리만 끊어졌다 이어졌다  간간히 화답하고 있다. 돌 사이에 붙은 큰꿩의 비름 뒤로, 어둠이 데리고 노는 고요함에 때로 나뭇잎 스치는 소리도 숨 죽인다.


   가을의 발걸음이 호수의 물 위를 물이랑으로 거닐다 부들의 가지런하고 기다란 잎을 흔들고 다가와, 습한 이슬로 맺히면 너는 함초롬한 모습으로 나를 본다. 은빛 반짝이는 눈을 보며, 빛이 그리운 어둠 속에서 수수꽃다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부드러움과 사늑함. 그것은 언어가 침묵할 때 더 아름다운 너와 나의 대화이다. 아직은 땀이 가시지 않은 더운 얼굴로 다가가면 너는 살며시 눈 감은 상냥한 모습으로 나를 안고, 길고 조용한 숨을 내쉰다. 우리가 주고받는 즐거운 이야기는 어둠  속으로 연기처럼 흩어지고, 밤은 더 깊어져 내일을 부르고, 맞잡은 손은 더 뜨거워져 시간을 잡으려 하고, 맞댄 볼은 또 촉촉한 물너울로 젖는다.


  풀어헤쳐진 길. 마음이 그리운 길. 내가 너와 함께 다니는 길에도, 돌아오는 길에도 너는 있다. 귓가에 머무는 너의 목소리. 귀 밑에 남는 너의 따스한 온기. 포옹 속에 남아있는 두근거림. 가슴 속에 남아있는 살품의 향기.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을 기억하고 또 다시 상상과 반추의 꿈을 꾼다. 꿈처럼 벅찬 하루가 내게 살아있고, 또 살아가야 한다. 늘 그렇게 너는 내 곁에 있다.

그리고 느낀다. 항상 너를 볼 때 내 가슴은 설레고, 또 붉은 단풍이 든다.

이 가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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