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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Jan 03. 2018

푸른 빙하를 닮은 여인의 노래

노르웨이 Kari Bremnes

* 지적인 여자

  여자가 나이가 들면 원숙해지고 또 지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무식하고 사나워지고 성질 고약하게 변하는 여자도 있기는 하다. 아무튼 지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는 여자를 잘 관찰해보면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정말로 지적인 모습과 너그러움과 깊이, 그리고 고상함을 지녀가는 부류와, 다른 하나는 지적 허영심이 극대화되어 쪼가리 지식의 알맹이 없는 문화 예술 껍데기로 치장하고, 또 그것으로 문화적 상류층인 양 하는 부류이다. 그리고 럭셔리 브랜드로 감싸서 '파노플리 이펙트(Panoplie effect)'에 빠져서 자가당착의 상승효과를 최대로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러면 남자는 과연 어떤 여자를 좋아할까. 답은 예쁜 여자이다. 지적인 여자든 허영 끼 작렬하는 여자든 예쁘면 좋아한다. 그게 아메바하고 별 차이 없는  단세포로 구성된 남자의 속성이다. 게다가 천박한 백치미가 있는 여자도 예쁘기만 하면 좋아하는 변태 끼는 덤이다.
하지만 아무리 단세포일지라도 남자도 사람인데 왜 동가홍상을 마다할까. 예쁘면서 고상하고 지적이기까지 하면 금상첨화다. 다만 그런 여자가 자기 차지가 안 되기 때문에 못할 뿐이다.



* 푸른 빙하를 닮은 가수

  여자 가수가 56년생이면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다. 그런데 비교적 지적으로 보이고 예쁘기까지 한 가수가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가 아니라 저 멀고도 먼 노르웨이에 있다. 왜 하필 그 먼 나라 가수를 골랐을까. 답은 예쁘니까. 노르웨이의 푸른 빙하처럼 말이다. 그리고 노래도 잘 하니까. 이 대목에서 나에게 "정신 나간 놈!"이라고 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정신 나간 놈'에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미친놈'이기 되기 때문에 정신 나간 정도로 인식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괄호열고 그런데 사실 나도 우리나라 여자가 훨씬 예쁘다고 생각한다 괄호닫고
 
한 때 술자리에서 건배사 대신 오가는  '지부지쳐' 라는 비속어 비슷한 말이 있었다. 즉 술잔이 비면 '지가 부어서 지가 쳐 먹는다'는 좀 저속한 표현이다. 이것을 가수와 음악에 대입하면 '싱어 송 라이터'이다. 말하자면 자기가 곡을 쓰고 자기가 부르는 가수인 셈이다.
카리 브렘네스 (Kari Bremnes)는 속된 말로 '지부지쳐' 가수이다. 카리는 애당초 가수는 아니었다. 노르웨이의 명문 대학인 오슬로 대학교에서 언어학, 문학, 역사학, 영화를 연구해서 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그리고 전업 가수가 되려고 결심하기 전까지 저널리스트로 수년간 일했다고 한다. 따라서 지적인 면은 표면상 고루 갖춘 셈이다. 물론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뭐 실제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여자는 '보여지는 것'과 '실제'가 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남자들은 다 알고는 있다.


* 스펠만 상 수상

  가수가 된 후 발매한 음반은 몇 차례 스펠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Mitt ville hjerte(My wild heart), 1991년에는 Spor(Trace)라는 음반, 그리고 2001년에는 음악을 하는 남자 형제 두 명과 Soløye(Sun eye)라는 음반으로 스펠만 상을 수상했다. 스펠만 상이란 이른바 노르웨이의 그래미상쯤 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연말 가요 대상'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카리는 현재 노르웨이 작곡작사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노래 부르는 실력도 괜찮지만 사람 관계의 이른바 '꽌씨 (关系)'도 원만한 모양이다. 그리고 나이도 많이 먹어서 고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 조용하고 서정적인 음악

  카리의 음악은 다이내믹하지는 않다. 그저 흘러내리는 빙하의 눈물처럼 조용하고 서정적이다. 필자가 권하고 싶은 노래들은 Fantastik Allerede (Fantastic Already, 2010)라는 음반에 들어 있다.
  열 장 가까이 되는 카리의 음반을 다 구할 수는 없고 그저 한 장 들어보고 분위기 느끼면 족한 것이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비싸기로는 '칼만 안 들었을 뿐 거의 강도' 급에 속한다. 때문에 음반 가격도 엄청 비싸다. 그런데 이 음반은 인터넷에서 사면 가격도 착하고, 또 더 착하게도 한 장 가격에 두 장이 들어 있는 더블판이다. 이런 때 웃음이 나는 걸 보면 필자도 참 근검한 편(?)이거나 공짜를 좋아하는 속물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쪼잔한 거다.


  이 음반의 좋은 점은 그간에 발매된 음반 가운데 히트곡만 골라서 내는 베스트 음반 비슷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꽤 좋은 곡들이 상당수 들어있고, 또 세계적으로 카리를 유명하게 만든 영어 버전 음반 'Norwegian mood'의  히트곡을 노르웨이어로 똑같이 불러서 수록해놓기도 했다. 카리의 음악 장르는 재즈도 있고 발라드도 있고 팝송도 있다. 그래서 굳이 장르를 나눈다면 '컨템퍼러리 팝'이라고 구분하면 대강 맞을 듯싶다. '컨템퍼러리 팝'라고 해서 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의미는 별 것도 아니다. 그저 '시류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들어볼 만한 곡들로는 '노르웨이언 무드' 음반에 들어있는 영어 번안 곡 'A Lover in Berlin'의 노르웨이어 리메이크 곡을 비롯해서  몬트리올, 코펜하겐 항구,  해석해보면 '가슴을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다'는 곡, 또 2004에  발매했던 ‘판타스틱 얼레디’에 수록된 이 판의 헤드라인 곡 등등 꽤나 많다. 아무튼 두 장에 모두 33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15곡 정도는 다른 음반에서 히트했던 곡들이다. 조금 독특한 북유럽의 서정적인 음악을 접해볼 수 있는 그런대로 괜찮은 노래들이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들어 보시고 혹여 썩 마음에 안 들더라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그냥 넘어가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노르웨이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오로라와 푸른 빙하를 직접 볼 수는 없으니 기분으로라도 느낀다 생각하시며...


   다음은 Norwegian Mood (2000)에 수록된 <베를린의 여인>이라는 곡의 가사를 번역한 것이다. 이 번역본은 포항공대 수학과 강 병균 교수님께서 필자의 글을 읽으시고, 음유시인 카리 브렘네스의 가사 중 하나를 골라서 직접 번역해주신 것이다.  다시 한번 강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베를린의 연인>

한때 베를린에 연인이 있었어요.
내 옆 테이블에 앉은 연약한 노파가 말하더군.
그이의 목소리는 아주 오래된 바이올린 소리 같았어요.
그가 제게 말을 걸더군요. 아, 그 목소리. 목소리.
사람들은 그걸 남자에게 빠져드는 증세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 추락은 절 날게 했어요.
하늘 높이 솟아오르게 했지요.

말도 안 되었고 아무 계획도 없었지요.
하지만 누가 이 사랑의 열정을 마른땅의 안전함과 바꾸려 할까요?

나도 아니에요.
그도 아니지요.

그리고 우리 둘은 알았지요.
멀리멀리 여행해야 한다는 걸.
사라져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요.
아무도 우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돛단배가 우릴 만으로부터 실어갈 거예요.
돛은 바다로 부는 바람에 부풀어 오르지요.
그러면 그 바람에 우리 눈이 멀고 말지요.
우린 도박을 했어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미래를 걸었어요.
우린 폭풍을 향해 돛을 올리고 나갔지요.
안전일랑 육지에 내동댕이쳐 버리고.
우린 넘어갔지요.
이성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곳으로.
하지만 누가 조류를 길들여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할 수 있겠어요?

나도 아니에요.
댁도 아니지요.

현실이 종말을 가져왔지요.
모자 밑에서 떨며 가냘픈 늙은 여인이 말하더군요.
고상한 가치 체계는 친구가 아니에요.
이제 우리 눈을 멀게 하는 것은 이성이에요,
제발 이 말을 믿어주세요.
사랑의 열정은 통제받는 걸 싫어하지요.
순결함만으로는 범선의 넓은 돛을 채울 수 없지요.
삶은 가끔 우리가 두려워하는 걸 가져오기도 하지요.
하지만 언제 떠나야 할지 언제 머물러야 할지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나요.

당신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에요.


<A Lover In Berlin>

Once I had a lover in Berlin,
Said a frail old woman from a table next to mine.
His voice was like an ancient violin
And he spoke to me - that voice... that voice!
I believe they call it falling for a man,
But this falling made me fly, left me soaring for the sky.
There wasn't any sense, there was no plan,
But who would trade this passion for the safety of dry land?
Not I.
Not he.

And we knew we had to travel far away,
We knew we had to disappear, where no one else could find us.
A sailing ship would take us from the bay.
Its sails would fill with an offshore wind to blind us.
We gambled our security - the future for the now,
Sailed off toward the storm, safety cast aside.
We'd gone beyond what reason would allow,
But who could tame the tidal wave and tell it where to go?
Not I.
Not you.

Reality then brought it to an end,
Said the frail old woman, shaking underneath her hat.
A decent set of values is no friend.
It's reason now that blinds us, please believe!
And passion is not willing to be steered.
Purity alone won't fill a ship's wide sails.
Life will sometimes bring what we most feared,
And who could ever say when to go or when to stay?
Not you.
Not we.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



https://youtu.be/7GwYV7xho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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