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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Jan 07. 2018

기차에 푹 빠진 작곡가

Antonín Leopold Dvořák

* 기차와 사람

  기차역에는 늘 누군가 오고 또 누군가는 떠난다. 그것은 누군가는 남고 또 누군가는 이별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줄의 기찻길이 만들어 가는 이 미묘한 분위기는, 한 지점에서 볼 때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무한의 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한의 기찻길을 따라가는 눈은 하늘에 걸리고 때로 구름에 걸린다.

  그 기찻길의 플랫폼은 허리에 붙어 있고, 또 역사도 거기 기대어 서있다. 주변에는 떠나지 않은 기차가 멋쩍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고, 수리 중인 기차는 넋을 놓고 정비사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기차는 때로 경적 소리를 내기도 하고 꼬리를 물고 사라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침목에서 나는 절은 기름 냄새는 어제가 남긴 무표정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제 각기 가진 아픔과 환희와 사랑과 그리움과 열망을 멀리 바라보는 두 줄의 기찻길 위에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망각의 아지랑이가 일 고 있다. 기차가 도착하면 철조망 너머 동네 강아지는 내리는 승객에 대고 맥없이 짖기도 하고, 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물러서기도 한다. 작은 헛기침을 남기면서.
  내리는 승객들의 가방에는 타지에서 가져온 고단함이 담겨있고, 떠나는 승객들의 가방에는 희망이라는 '가끔은 쓸만한 짐'이 들어있다.



  * 작곡가의 기차 사랑

   안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작(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년 9월 8일 ~ 1904년 5월 1일)은 ‘기차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기록을 보면 앞서 말한 서정적인 차원의 마니아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공학적 관점의 마니아가 아니었나 싶다. 드보르작은 오스트리아 제국 프라하(현재는 체코 공화국) 근처의 넬라호제베스(Nelahozeves)에서 태어나서,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곳 넬라호베제스에는 1850년 경 증기기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드보르작은 평생 기차 구경하는 것이 가장 큰 취미였다고 한다. 특히 그는 매일 기차역에 가서 증기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와 기차 바퀴의 피스턴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발명할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작품 전부와 바꿔도 아깝지 않겠다고 말한 기록이 남아 있다.

“기차는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말 많은 부품들. 부품 모두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각자 그 기능이 있고 가장 작은 나사마저도 제 위치에 있으며 무언가를 연결하고 있다. 모든 부품에는 그 목적이 있고, 그 기능이 있는데 그것들의 모여서 이루어 내는 결과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오! 그런 기관차가 철로에 있네. 석탄과 물을 넣고 단 한 사람이 작은 레버를 누르면, 큰 레버가 작동되기 시작하고 수천 톤의 쇳덩어리 기관차는 토끼처럼 움직인다. 내가 만약 기관차를 발명한 사람이라면, 나는 내 모든 교향곡과 바꿀 수 있겠네”




* 제자에게 시킨 심부름

  드보르작에게는 기차에 얽힌 또 다른 일화도 있다. 그의 딸 오틸리에는 드보르작의 제자였던 요제프 수크와 연인 관계였다. (Josef Suk, 1874년 1월 4일 ~ 1935년 5월 29일. 체코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후에 프라하 음악학원 원장이 된다. 1885년부터 1892년까지 프라하 음악원에서 드보르의 제자였고, 1898년에 드보르의 딸과 결혼했다)
  어느 날 드보르작은 새로 개발된 기관차를 관찰하러 갈 시간이 없어서 제자인 요제프 수크를 보내서 기관차의 제조 번호를 적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수크는 기차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을 적어서 드보르작에게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드보르작은 그의 딸 오틸리에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이런 멍청이와 정말로 결혼할 생각이냐?"

 

프라하 기차역


  * 드보르작의 명곡들

  드보르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한 체코의 작곡가로서 관현악과 실내악에서 모국의 보헤미안적인 민속 음악 작풍과 선율을 표현하였다. 즉 스메타나에 의하여 확립된 체코 민족주의 음악을 세계적인 고전음악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곡가이다.
  드보르작은 외삼촌과 리마 선생이 그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1857년 16세에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음악가가 되는 길을 걷게 된다. 당시 드보르작은 바그너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는데, 주로 멜로디와 화성의 특징을 이해하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드보르작에 대한 이력과 그가 작곡한 명곡들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필자가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을 다시 늘어놓는다면 어쩌면 바보 잔치하는 이야기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대로 기차와 얽힌 곡들만 조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드보르작이 1892년 51세 무렵 미국에 초빙되어 뉴욕의 국민음악원 원장으로 재직할 때 작곡된 곡들은 그가 평소 추구하던 음악과 내용이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교향곡 제9번 <신세계>, 현악 4중주곡 <아메리카> 등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드보르의 작품이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에 작곡된 것이다. 그리고 1894년 휴가차 귀국길에서 피아노 독주곡, 8개의 <유모레스크>를 작곡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슬라브 풍의 음악에 흑인과 인디언의 멜로디를 융화해서 곡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라하


  * 음악 속으로 달리는 기차
 
  그의 음악 속에서 나타나는 기차는 꽤나 많다. 우선 대표적인 것이 <신세계> 교향곡이다. 증기 기관차가 이제 뭉게구름 같은 엄청난 양의 하얀 증기를 하늘로 뿜어내며 달리기 시작하는 모습은 이 곡의 마지막 악장 첫 소절부터 나타난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천천히 점증형으로 다가오며 스케일의 웅장함과 때로 감격적 진취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치 기차가 힘차게 달리는 듯한 느낌 그대로이다. 이 곡의 4악장 첫 소절은 또한 공포의 점증법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화 <죠스(Jaws)>에서 식인 상어가 나타나는 대목에서 공포를 극대화하는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영화 죠스의 포스터>



   또한 드보르작은  미국에 있을 때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람하고 나서 그것에 영감을 받아   현악사중주 12번 <아메리카>를 작곡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제자가 목격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 있다.

  “1893년 6월 5일 드보르작은 폭포가 있는 작은 마을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가 이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이 마을의 경치를 보면서 그의 조국과 고향을 떠올렸던 것 같다. 드보르작은 이 마을에 자리를 잡자마자 곧바로 그의 천재적 작품을 구상했고, 그는 사흘 후인 6월 8일 벌써 그의 새 작품 <현악 4중주 F장조>의 1악장의 작곡을 시작하였다. 다음날 아침 1악장이 완성되자 그는 곧 2악장을 쓰기 시작했고 저녁에는 3악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6월 10일에는 마침내 현악 4중주 전곡을 완성했다. 그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하며 악보의 마지막 페이지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빨리 작곡을 마치게 되어 대단히 만족합니다’라고 썼다.”  


<드보르작의 가족 사진>



     이 곡 역시 기차에 관련된 부분이 있다. 위키피디아 자료에 따르면, 현악사중주 12번 <아메리카> 4악장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받은 영감뿐만 아니라 기차에 대한 사랑도 적지 않게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즉, 기관차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소절들이 적지 않다고 평하고 있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유모레스크> 7번도 기차 소리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유모레스크>는 원래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유모레스크> 9곡 중 7번째 곡이다. 뉴욕의 국립 음악원장이었던 드보르작은 고향 보헤미아로 돌아오는 길에 <유모레스크>를 작곡했는데, 기찻길 위를 달리는 기차 바퀴 소리를 비교 실험 결과, 놀랍게도 기차소리와 유모레스크의 반복 리듬이 거의 일치하더라는 것이다.


  사람은 어릴 때 받았던 영향이나 가슴에 지닌 동경이 평생을 간다. 드보르작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프라하에 철도가 개통되고, 드보르작의 고향마을 넬라호제베스를 지나면서 9살 소년 드보르작은 증기기관차의 냄새, 소음, 웅장함에 거의 빠지다시피 했고, 또 가슴에 각인되어 버렸다.  그리고 평생을 기차에 대한 동경 속에 살았고, 기차에 대한 생각 속에서 작곡을 했다. 그가 남긴 위대한 음악 속으로 오늘도 기차가 달리고 있고, 또 그 달리는 기차를 따라 우리는 지금 드보르작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살고 있다.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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