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걸어서 시간 속을 지난다 / 김선호
눈덮인 겨울이 입춘의 어눌한 사투리로
경칩의 언어를 배우고 나면
서둘러 푸른 잎들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아니, 늘 그래 왔다
하지만 지금은 추위에 모든 노래가 지쳐있다
그리고 꿈이 꿈의 자리를 옮길 때
별은 총총히 어둠과 메마른 가슴에 박혔다
별은 빛났지만
잃어버린 동화가 돌아오지 않는건
어느 시인의 글처럼
구멍난 청바지 사이로 하얀 살을 훔쳐볼만큼
시간의 머리가 커져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뼈속으로 바람이 마실오는 세월에
이제 물때가 끼고
산 자의 기억은 죽은 자의 한을 안고
가쁜 숨소리를 내뱉고 있다
되돌아보면
이렇게 살았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도 들고
또 어떤 때는 그렇게 못 살아서
조금이나마 겸손해진 것 아닌가 생각도 들고
생각해보면
주어진 시간들이 꽤나 많은 괴로움을 주었고
지나간 시간들이 적지 않은 슬픔도 주어
잊혀진 시간들이 인내를 가르친 것 아닌가 싶고
지나고보면
아름다운 시간들이 참 많이도 지났고
그리운 시간들이 물처럼 흘러갔다
하여 잡고 싶었던 시간들이 기억으로라도 남고
돌이켜보면
생각하는대로 행동에 옮기지 못했고
꿈꾸는대로 이루이지는 것이 삶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그렇게
한 걸음 씩 걸어서 시간 속을 지나와 보니
거기 또 내가 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