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이모집에 도착했을 땐, 점심때가 다 되어서였다.
미국식 단층집들이 양쪽으로 나란히 한 여섯 채쯤 각각 정원을 예쁘게 단장한 채 모여 살고 있었다.
신기한 건 담장이나 벽이 없고, 대문이 따로 없는 게, 일반 한국의 건축양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미드에서나 볼 수 있는 집이라고 할까.
예쁜 작은 꽃들이 심어져 있는 화단옆에 나란히 일렬주차를 하고, 이모한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핑크색 후드티를 입은 이모가 현관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불렀다.
집 안 주방에 있는 4인용 식탁올 보니, 이미 불고기에 생선구이와 직접 키운 온갖 채소들로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찜질방 갔다 와서 밥 먹기엔 너무 늦을 거 같구나. 배고프지? 어서 밥부터 먹자." 이모가 말했다.
이 말은 찜질방은 안 가기로 포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한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배불리 밥을 맛있게 먹었다.
유난히 작아 보이는 밥공기에 담은 밥을 조금 남겼는데도, 맛있는 반찬들이 하도 풍성하고. 나눈 대화가 풍성해서 저절로 배가 불러왔다.
"그런데 아버지 책들은 어디에 뒀니?
내 정신 좀 봐. 이제야 물어보네."
"곤색 가방 안에 들어 있어. 빠트린 게
있으면 말해줘. 내가 다음에 또 올 때
갖다 줄게."
나는 작년에 돌아가신 아빠의 저서들을 챙겨 갖다 달라는 부탁을 이모부한테 이미 받았던 터였다.
엄마가 사진과 책이며 아빠가 입었던 옷가지 등을 한꺼번에 처분하고 정리하느라 정신없을 때, 재빨리 유작인 도서들을 챙겨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신학대학교 교수셨고, 목사님이셨다. 그래서 저서들은 대부분 설교집과 강해집들이었고, 나는 한 번도 펼쳐 본 적이 없는 책들이었다.
하지만, 이모부는 아빠의 설교와 신구약 강해를 이미 다 읽으셨고, 소장하고 싶어서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찬송집도 하나 있었는데, 우연히 펼쳐 본 곡 해설에 놀랍게도 내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곡 해설에는 아빠의 작곡시기가 언제인지 밝혀주고 있었다.
내가 결혼식을 다섯 달 남기고, 설악산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수술을 할 때, 춘천 가는 길에 작곡하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창자가 끊어지는 심정을 억누르고, 평안을 구하기 위한 찬송을 작곡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 찬송의 유래도 모르고 그저 곡
이 좋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아빠의 염려와 사랑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야 유작을 전하는 딸로서, 상주로서
상주 가는 길에 예전 아빠의 다정한 눈빛이 생각나게 되었다.
그 다정함을 책과 보자기에 고이 싸서 무사히 전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이곳에 오는 길이 가슴에서 조금은 멀었던 아빠에게 더 다가가는 길이 된 것 같다.
( 4화를 기대해 주세요: 매일 연재. 6-7화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