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의 낭만, 실제로는 낭비.

원가절감을 위해 로스팅을 한다면 당신의 삶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

by woolly kim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현재 제 매장 원두는 외부 납품 계획이 없으며

이 글은 어떤 특정 업체를 추천하기 위한 목적도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원두 선택은 어떻게 해야할까?


원두를 공급하는 방법은 지금 생각해 봤을때 아래의 경우면 거의 해결된다.

대형 로스터리 카페를 통한 납품 (ex. 리브레, 프릳츠, 모모스 등)

로스팅 전문 공장을 통한 납품 (수없이 많다)

머신 업체의 끼워팔기를 통한 납품 (ex. 머신은 공짜로 드릴게 원두는 저희 거 쓰시면 됩니다)

직접 로스팅



가장 피해야 하는 선택지는 무엇인가?


자. 이제 질문을 하나 하겠다.
저 4가지 방법 중 가장 위험하고, 피해야 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3번 같다고? 아니다.
제일 위험한 것은 바로 직접 로스팅하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초보인 경우 1번의 경우를 추천하며,
어느 정도 센서리 능력이 있고 차별화를 하고 싶다면
당신의 카페를 위해 커스텀으로 원두를 볶아 줄 수 있는 로스팅 공장을 추천한다.




로스팅을 비용 절감으로 접근하면 왜 위험한가


로스팅을 직접 한다는 것을 단순히 비용 절감 측면으로 접근하면 매우 위험하다.
특히 1~2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매장이라면 더더욱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원두 값 대비 생두 값이 어마어마하게 저렴한데…
차라리 초기에 돈을 좀 투자해서 로스터기를 구매하고
1~2년 정도 로스팅을 직접 하면 로스터기 산 본전은 충분히 뽑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나?


개인적으로 생두 선택부터 추출까지의 모든 과정, 특히 센서리 측면에서
[특정 수준 이상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가장 쉬운 파트가 로스팅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각종 숫자들을 잘 파악하고, QC를 통해 수정·보완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말 ‘직접 로스팅’할 준비가 되어 있나?


하지만 아마도 당신이 이 글을 여기까지 진심으로 읽고 있다면,
로스팅에 대한 경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아닌데? 나는 어디 로스터리 카페에서 일하면서 로스팅 해 본 적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나?

그럼 한번 잘 생각해 봐라.

[생두 선택, 로스팅 프로파일 설계, 생산, QC, 판매]
이 모든 과정을 당신이 단독으로 처리한 적이 있는가?
동일한 배합의 블렌딩 또는 동일한 싱글 오리진을
4계절을 거쳐 가면서?


아마 없을 가능성이 크다.

저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사실 지금 이 글을 읽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은 이미 어떤 업체에서 공급을 받을지 정해 두었든지,
직접 로스팅을 한다면 어떤 로스터기를 구매할지까지 정했기 때문이다.




원두 가격이 왜 생두 대비 ‘왜 비싼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왜 로스팅을 직접 하는 게 손해일까?
당신은 지금 원가 계산이라는 것을 해 보다가
납품받아서 사용하는 원두 값보다 같은 생두의 값이 훨씬 저렴하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대단하다!! 박수를 쳐준다!!


그런데 이건 당연한 말이다...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 원두가 생두 값에 비해 비싸지는지도
좀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직접 로스팅에는 숨겨진 비용들이 너무 많다


로스팅을 직접 하면
“응 뭐 하루에 한두 시간씩 돌리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로스팅을 직접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잘 알아둬야 한다.


1) 임대료 상승

로스터기를 놓을 공간은 당연한 것이며
생두를 보관할 공간도 필요하다.

그 공간에 대한 인테리어도 별도로 필요하며,
로스팅을 매장에서 직접 하는 순간
당신이 알아본 카페 창업을 위해 필요한 행정 절차 자체도 달라져야 하는 경우가 많고,
소방법도 신경 써야 하는… 아주 번거로운 세팅 작업이 시작된다.


2) 생두 보관 환경 구축

생두의 보관은 와인의 보관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온·습도가 중요하며 직사광선을 절대 피해줘야 하고 통풍이 잘되어야 한다.

와인은 장기 숙성 가능한 와인이라면 오래될수록 가치가 상승하지만,
생두의 경우 장기 보관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3) 열원 비용 + 전기/가스 공사

전기 로스터든 가스 로스터든 열원에 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가스 로스터기라면 가스관을 끌어와야 할 것이고,
전기 로스터라면 승압이 필요하다든지
단독 사용을 위한 배선을 별도로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4) 인건비 — 가장 큰 비용

거기까지도 해결했다?

원두의 가격에서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원재료? 가스비? 전기비? 포장지?

절대적으로 인건비다.


당신이 로스팅을 직접함으로써 인건비도 0으로 만들고
원두 값도 절약했다고 생각하는가?


자영업자에게 가장 빠듯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당신이 로스팅을 직접 하는 전체 시간을 최저시급으로만 계산해 봐도,
그냥 납품받아서 사용하는 게 금액적 측면에서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 달에 2~3번만 돌리면 되지 않나?”


날 잡고 한 달에 2~3번만 돌리면 될 것 같다고?
그 정도 물량으로 대체 본전은 언제 뽑으려고?


로스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그 어떤 것도 동시에 진행할 수 없다.
오로지 로스팅만 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음악조차 듣지 못한다.

진짜 그냥 로스터기, 프로파일 측정해 주는 도구들과의 눈싸움이다.




프로파일 설계의 난이도


자. 여기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치자.

사실 정상이라면 이 정도 읽었으면
“아 그냥 납품받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가끔은 나처럼
“응 몰라 하고 싶으니까 할 거야!”
라는 마인드의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적어보겠다.


그래! 로스터기를 들여놨다고 치자.


로스터기는 같은 모델이라도
다른 개체와 완벽히 똑같은 프로파일로 볶는 게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내가 어디서 다뤄본 머신이라 할지라도
세팅되어 있는 공간에 따라 프로파일이 조금씩은 달라진다.


전기 로스터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220V였는지 230V였는지 250V였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내부 온도나 습도에 따라서도 미세하게 틀어진다.


사실 같은 개체로도 완벽히 똑같은 프로파일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재현하는 것은 매우 고난이도의 작업이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불가능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외부 환경은 둘째치고
드럼 안에 들어가 있는 생두의 전체 표면적, 수분량, 밀도 등이
이전 배치와 완전히 동일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하기 때문에...




프로파일 탐색 과정에서 버려지는 생두


아무튼.

당신이 로스터기를 들여왔다면
큰 틀의 로스팅 프로파일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때 꽤 많은 양의 생두가 버려진다.

버려지는 양은
당신의 로스터기 용량만큼 버려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두 번 버리고 찾아낸다?
당신은 아마 로스팅 마스터일 것이다.


그나마 인지도가 있고 사용자 후기가 많은
기센, 프로밧, 디드릭, 이지스터, 스트롱홀드 등의 머신의 경우
초반 몇 배치 내에서 큰 틀의 프로파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남들이 한 것을 따라 한 것일 뿐이고
당신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큰 틀의(이 구간 안에서 놀아야 하는구나)
숫자들(온도, 시간, ROR 등등)을 파악했다면
그 안에서 당신이 원하는 세팅값을 또 찾아 나서야 하는데,
이건 사실 모든 계절의 변화를 한 번씩은 겪어봐야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된다고 생각한다.




저렴한 로스터기? 언급할 필요도 없다


반면, 저렴한 가격이 장점인
사용자 후기가 많지 않은 브랜드의 기계를 구입하는 경우는
더더욱 난감해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겠다.

저렴한 가격 대비 나쁘지 않은 성능을 가진 로스터기를 구매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로스팅을 할 줄 안다는 것이고,
이 글은 그런 분들을 위한 글은 아니니까.




로스터기는 ‘날카로운 칼’ 같은 도구다


직접 로스팅을 한다는 것은
다른 매장과의 차별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지만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자영업자의 살을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가장 위험한 흉기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위에는 언급하지도 않은 로스터기 유지 보수에 대해 말하자면
유지 보수 제대로 안 하다가 불나서 폐업한 경우도 있다...
(이건 진짜 인생이 폐업 수준으로 간다...)

더 말할 이유가 있나?




그럼 언제 로스터기를 들여놔야 할까?


당신의 카페 사업이 어느 정도는 안정권에 들어서서
추가적인 확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는 시점에서 고려해 볼 만한
여러 가지 항목 중 하나일 뿐이다.




로스팅의 환상과 현실


로스팅은 밖에서 보면 아주 우아한 직업일 수 있다.
거대한 머신을 뚝딱뚝딱 만지는 장인의 모습.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을 수 있지만
현실은 전혀 아니다.


생두에서 나오는 엄청난 미분들,
로스팅 과정에서 발생되는 엄청난 연기,
혹시라도 주택지에서 한다면 들어올 어마어마한 민원들,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알아본 제연기의 말도 안 되는 가격,
심지어 제연기를 사도 민원이 들어온다!!!!!!!!




초보에게 로스팅은 ‘절감의 기술’이 아니다


오로지 커피로만 승부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로스터기는 조금 나중에 사도 된다.


앞선 두 글에서도 썼지만,
커피로만 승부하겠다는 사람이 이 글을
‘도움을 받기 위해’ 읽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정해 두었다.


로스팅을 해 생산 원가를 낮추는 작업보다
먼저 수행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것들을 잘 해 나간다면
오히려 납품을 받아서 사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


결국 로스팅은
‘싸게 가져가려는 기술’이 아니라
‘더 나은 품질을 만들기 위한 전문성’이다.


초보 창업자 입장에서 로스팅은
비용 절감의 비밀 병기가 아니라,
오히려 손도 못 대는 비용과 시간이 새어 나가는 구멍일 수 있다.


프랜차이즈나 대규모 사업자를 노리는 게 아니라면,
개별 카페의 경쟁력은 로스팅 장비보다
‘맛을 읽는 능력’과 ‘일상적인 운영’에서 나온다.


원두는 직접 볶는다고 갑자기 싼 게 아니고,
맛도 자동으로 좋아지는 게 아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로스팅에 손을 대기보다,
‘지금 당장 내 가게에 필요한 것’부터 정확히 선택하는 것이
진짜 절약이고, 진짜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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