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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Jun 29. 2023

한 사람의 전성기를 볼 수 있다는 것

영화 '중경삼림'

진짜 볼 것 없다 할 때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본다. 그 중 중경삼림을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찾아보니 이 영화는 액션 영화로 준비하던 중 갑자기 방향을 틀어 가볍게 만들었던 영화라던데 영화 속 디테일들이 과히 가볍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로 타락천사'는 집중이 딱히 되진 않았지만 그 대체로 찾았던 이 영화에서어떤 감독의 전성기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1. 내용보단 기술이 빛난, 그래서 더 좋은

생각해보면 왕가위 감독은 대단한 스토리텔러는 아니다. 나에게 그는 글을 우월하게 잘 쓴다는 느낌보다는 영화의 기술적 디테일에 신경을 쓸 줄 아는 감독이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적인 부분에 크게 감동받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감독은 예외다. 카메라 워킹, 빛의 사용 등 기존의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중경삼림의 내용만 봐도, 실연한 남자의 우울함, 한 남자를 향한 여자의 짝사랑이라고 압축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은 심플하다. 하지만 이 남자의 실연의 상징과도 같은 통조림의 유통 기한, 자칫 스토커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여자의 짝사랑을 creepy하게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여주의 새침한 척하는 연기 등 이 영화는 전체가 아닌, 디테일을 보게 하는 영화다. 거시적인 관점이 아닌, 미세한 감상을가능하게 한다. 볼 때마다 내가 놓친 디테일을 찾아낼 때,  머리를 탁 치는 재미, 이 영화를 n차 관람하게 하는 매력이다.


2.누군가의 전성기를 본다는 것

이 영화는 누군가의 전성기를 한 눈에 보는 느낌을 준다. 양조위 배우도 그렇지만 왕가위 감독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다. 홍콩 영화는 어느 시대를 풍미했지만 현재는 볼 수 없는 분위기의 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배우들의 전성기를 담고 있다. 전성기라 함은 누군가의 젊은 시절만은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매력, 능력이 빛을 발하는 시기인만큼 양조위 배우는 청초하면서도 애처로운 매력으로, 금성무 배우는 너무 찌질해서 안쓰러운 매력으로, 왕가위  감독은 감각적인 연출 실력으로 각자의 매력을 경쟁한다.


관객된 입장에서 이 지점이 참 좋다. 90년대의 헐리웃도 그렇지만 어떤 재능러들의 능력이 폭발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객에게 축복된 시간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 아련함이 더해질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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