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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Aug 20. 2020

어둡다고 하기엔 밝고, 밝다고 하기엔 어두운

영화 블루아워 두서없는 감상평(스포일러 有)

삶의 의욕이 없는 여자, 스나다. 스나다는 동료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남편과 이렇다 할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화난 건지 저의를 알 수 없는 표정, 동태 같은 눈깔을 하곤 상황에 치이듯이 웃어야 할 땐 웃는 이 여자, 위태롭기 그지 없어 보인다.


"멈추면 죽어. 가다랑어처럼? 아니 참치처럼."


이 대사가 보여주듯, 진짜 멈추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치이는 삶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 여자 그저 목표도 없이 앞을 향해 가고 있기만 하다. 그 앞이 절벽인지, 평지인지, 언덕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앞으로 가기만 한다. 그런 그녀의 삶에 잠시 강제 브레이크를 건 친구, 기요우라.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일 만큼 미친 텐션의 소유자인 기요우라는 스나다를 강제 고향으로 컴백시킨다. 스나다에게는 상처가 가득한 공간인 이바라키로.



관람 포인트 #1 파편적인 가족의 모습


스나다와 기요우라가 이바라키에 도착하자, 기요우라만큼이나 목소리가 크고, 텐션이 높은 엄마가 그들을 맞이하고, 몇 년만에 찾아온 고향인 만큼 스나다에게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어색하기만 하다. 가족들과 기계적인 대화만을 나누고, 가족들은 상호 소통을 한다기보다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만을 쏟아낸다. 엄마는 드라마를 보면서 아무말대잔치를 하고, 아빠는 뜬금없이 기요우라를 끌고가 검을 다루는 법을 보여주며, 뒤늦게 나타난 오빠는 역겨운 말들을 농담이랍시고 하고 있다. 그런 기괴하고도 살짝 조증 기질이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스나다는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기요우라와 도망치듯 집을 잠시 나오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이 가족의 모습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면, 스나다가 시골 사람들은 촌스럽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자신이 가족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모습의 총체라고 생각했다. 감히 예상해 보건대, 스나다에게 할머니를 제외한 가족은 살짝 이상하고, 무서운 존재들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나다는 할머니의 손에 자랐고, 같은 집에는 살고 있었지만 한때는 별채였지만 지금은 창고라는 분리된 공간에서 할머니와 살았다는 것으로 보아, 스나다는 자신의 가족이 할머니와 자신을 소외시켰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스나다의 아버지가 할머니를 이야기할 때,

"그 노인네는 아직도 안 죽었대냐!"라는 대사를 보면, 스나다의 아버지는 할머니를 다 늙어빠져버려서 짐덩어리로 치부해버리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할머니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살았던 스나다는 할머니에 대한 애정은 보이는 반면, 다른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비교적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다. 영화 상에서 보인 가족들의 기행과도 같은 행동들은 실제 행동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갖지 못한 가족에 대한 애착의 부재가 불러온 파편적인 기억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관람 포인트 #2 기요우라의 정체


영화 상에서 기요우라는 정말 지치지도 않는지 꾸준히 즐겁고, 호기심이 많고, 눈치가 없나 싶을 정도로 스나다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영화 초반에 기요우라는 스나다의 우중충한 기분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이리저리 까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주어진 상황에 꼭 해야될 말만 하는영혼 리스 스나다와는 달리 붙임성 좋은 기요우라의 모습은 너무 상반되어서 처음에는 기요우라의 존재가 스나다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캐릭터가 나왔나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관람했었다. 영화가 끝나갈 때까지 기요우라는 그저 스나다의 삶에 비타민 같은 존재이려나 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 5분이 사람을 벙찌게 했다. 결과적으로 기요우라는 스나다의 과거의 모습을 형상화한 스나다가 만들어낸 환상이었고, 정체되어 있는 스나다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들의 파편이 모여 한 인간을 만들어내었고, 외로운 스나다에게 친구의 역할을 했다. 현실 때문에 정신을 놓을 것 같은 자신을 그렇게라도 붙들기 위해서 스나다가 한 방어기제가 아니었을까. 영화 속 마지막 5분을 보니 기요우라가 왜 그렇게 처음에 부자연스러워보였는지 이해가 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잘 간직하거라. 꿈은 깨어나면 언젠가 사라지게 되어 있단다."


타키는 꿈같은 미츠하로서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토모리의 풍경을 그리지만 기억이란 불완전한 것이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미츠하의 이름, 왜 미츠하를 기억하려고 했는지 등을 잊곤 한다.

잊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잡는 타키의 모습은 스나다가 기요우라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가 과거의 좋았던 기억들을 벗삼아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영화 상에서 스나다는 계속 어릴 적 자신이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혼자 시골길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떠올린다.


"요새 말이야, 계속 옛날 생각이 난단 말이야."


기억 속 스나다는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시니컬하지 않다. 그저 해맑게 중얼중얼거리며 길을 걷는다. 남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그저 해맑게. 도쿄에서 삶에 찌들어있을 때조차 그런 기억에 시달렸던 것은 그 기억이 그녀를 고향으로 오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그 기억이 일종의 신호탄이었던 것 같다. 스나다가 기요우라를 대동해 이바라키로 돌아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자신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는 곳에 방문함으로써 정면돌파를 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그리고 어른이 된 스나다가 과거와 같은 시간에 어렸을 때처럼 뛰어다닐 때, 기요우라가 손을 흔들고 있는 장면이 실질적으로 스나다가 정면돌파로 상처를 이겨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스나다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진전이 없다면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끝없이 생각하고, 정면돌파를 하는 것이 어떻냐고 권유하는 듯한 감독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또 내 맘대로 해석해본다.



관람 포인트 #3 기요우라를 알고 나면 보이는 것들


스나다가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면서 과거의 자신과 인사하는 장면은 더이상 기요우라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할머니가 한 대사 중에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버텼는데, 잘 살았던 건지는 모르겠네."


라고 하신 대사가 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이 이 대사가 스나다의 고민의 총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대사를 통해 현타가 왔던 것은 나보다 어른들은 이미 답을 알고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들도 끝없이 고민하시면서 살아가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잘 살았던 건지, 지금 잘 살고 있는건지 죽는 순간까지 줄다리기를 하시면서 살아가고 계시다는 것을.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와중에도 손녀딸을 위하는 마음에 종이에 고이 접어둔 용돈을 주시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스나다가 이바라키에서의 상처를 치유한 매개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향은 그녀에게 있어서 그저 촌스럽고, 귀찮은 존재들이 살고 있는 동네였는데, 할머니가 손녀가 오면 주려고 마련해 두었던 돈으로 표현된 마음이 그녀의 상처를 보듬었고,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자, 그녀는 비로소 과거의 자신과 작별하며,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을 형상화한 기요우라가 사라진다. 그런 연출은 더 이상 그녀가 과거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그런 맥락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건 것이 아닐까. 남편에게 자신의 된장국 사랑을 표현하며 세련된 척 하면서 살았던 자신은 거짓이고, 이제 조금 촌스럽더라도 나의 본질을 잃지 않고, 남의 눈을 덜 의식하고, 현재를 당당하게 살아나갈 거라고 남편에게 공표하듯 외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이 남편과 그녀의 관계의 벽을 깨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문제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 해결을 하려면 꼬인 실타래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스나다는 이제 하나 풀어나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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