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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Jul 31. 2020

똘끼 넘치는 그녀들의 일상

보기는 한참 전에 봐놓고 뒤늦게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대해 쓰는 구구절절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는 대학 때 만나 절친이 되어 동고동락해왔지만 여전히 미생인 세 친구의 라이프를 조명한 드라마이다. 오랜 연애를 끝내고,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 된 진주, 한 때 대박을 쳤던 다큐멘터리의 감독이었지만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은정 그리고 한 때 퀸카였던 대학생이었지만 남자 하나 잘못 만나 혼전 임신에, 이혼까지 초스피드로 경험한 마케팅 pd인 한주. 이 세 명은 남자 친구의 죽음으로 우울한 시기를 겪고 있던 은정을 보호하겠다는 표면적 이유와 돈 없는 청춘들의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워킹맘의 육아 스트레스를 분담하기 위해서 셋 중 유일한 자가 아파트의 보유자인 은정에게 붙은 내면적 이유의 근거로 세 친구는 동거를 시작한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1% 정도의 시청률로 종영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풀리자, 제 때 드라마를 시청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구가했다. 이토록 이 드라마가 특별한 홍보 없이 입소문만으로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느낀 바를 기술해보겠다.


1.    답이 안 나오는 2030 청춘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던 요소는 대사였다. 대사가 가진 병맛 코드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했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내린 쪽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병맛 코드가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말장난이 재미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드라마 속 대사가 가진 메시지에 한 번이라도 공감하신 적이 없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공감을 할 만한 날카로운 현실 감각을 지닌 대사들을 병맛 코드로 버무려 웃픈 감정을 느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예시로는


“꽃길은 사실 비포장도로야.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죽을 수도 있다.”

“약간의 좋았던 시간을 가지고 힘들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이 인생이다.”


와 같은 대사는 20대를 거쳐 30대가 되어도 노력은 만성화된 습관처럼 끊임없이 하는데, 여전히 인생에서 뭔가 이렇다 할만하게 이뤄낸 것은 없다고 느끼는 청춘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대사라고 생각했다. 유명 드라마 작가의 보조 작가로 일하고 있지만 드라마 작가로 입봉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진주나 아이 엄마로서의 역할도 지켜야 하고, 마케팅 피디로서 연예인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일을 진행해야 하는 한주처럼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는 현실감 있는 캐릭터들이 던지는 대사들이기 때문에 2030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더욱 공감이 갔던 것이 아닐까.


2.    인간 관계에 현타가 온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침


“트집을 잡은 게 아니라 틀린 걸 바로잡은 거지.”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를 앞질렀어.”

“그 때, 우린 그 때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 한 거야. 지난 시간은 그냥 두자. 자연스럽게. 내가 지금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게 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


등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30세대의 인간 관계에 대한 고뇌를 잘 보여주는 대사들도 엿볼수 있다. 그 인간 관계는 친구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연인 간의 관계일 수도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게 되는 20대를 거쳐 30대가 되어도 20대에 풀지 못한 앙금은 30대가 되어서도 풀릴 수도 있고, 안 풀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소민과 세 친구의 모습을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하면서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처한 상황이 바뀌기도 하면서 잠시 안 좋았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과도 다시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주와 전 남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부터 이기적인 사람은 끝까지 이기적일 수도 있으니 시청자들에게 좋은 인간 관계를 구축하는 것,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조금 편안해져도 좋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대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끝까지 드라마의 한 컷이라도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시청 후에 대사가 너무 공감이 가서 다시보기를 해도 지루하지 않은 드라마였다. 아마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인기가 많았던 이유로 새로 유입된 시청자 못지않게 나처럼 다시 대사를 곱씹고 싶어서 다시 보기를 했던 시청자도 꽤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 속 청춘들의 고민을 위트 있는 대사, 캐릭터들의 신기할 만큼 일관되게 시크하게 말하는 대사톤이 잘 어울려서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얻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병헌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병맛이라고 무시만 하기에는 너무 시대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을 신파적인 코드로 끌고 가지 않고, 피식 웃으면서 한번 더 곱씹게 해주는 감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각자 독립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각자의 성격이 뚜렷하다. 상사의 극딜에도 모두 맞받아치는 조용한 또라이 진주, 상사가 성희롱을 하면 “뭐, 이 섀퀴야”라고 답변하며 주변에 굴러다니는 막대기라도 집어 처단하러 가는 진격의 은정, 제일 소심해 보이지만 사고는 제일 크게 친 한주를 비롯한 모든 캐릭터가 정색하고 화를 표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이 남자 캐릭터에 대한 클리셰, 여자 캐릭터에 대한 클리셰를 뚫고, 여자든 남자든 성깔이 있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등바등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많이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각기 다 달라 보여도 모든 캐릭터들이 가진 공통점을 묘사하자면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 나오는 대사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남들이 뭐래도 쪼대로 사는 게 장땡이고, 사고쳐야 노다지도 터지지. 남들 뭐 먹고 사는 지 안 궁금하고, 내가 서 있는 여기가 메이저 아니겠냐.”


멜로가 체질에 나오는 진주나 은정, 한주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쪼대로 사는 캐릭터인 게, 진주는 남들이 하지 않을 뻔하지 않은 고백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드라마 작가이고, 은정도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던 친일파 후손들을 취재하는 다큐를 찍어 초대박을 터뜨린 전적이 있으며, 한주도 제일 소심한 것 같지만 애교를 부려달라는 감독의 요청에 정말 작정한 듯한 주부애를 선보이는 담대함을 가졌다. 다들 조금씩 크고 작은 사고들을 치면서도 각자의 현실에 충실하는 그들의 모습이 진정한 메이저 같아 보였다. 전혀 클리셰같지 않은, 조금은 또라이 같은 캐릭터들의 향연은 남에게 지나치게 굽실거릴 필요 없이 눈치도 좀 적당히 보고 살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한번쯤 사고쳐서라도 해보는 똘끼를 가지라는 감독의 따뜻한 메시지가 담긴 것이 아니었을까 예상해본다.



그것이 요새 젊은 세대들에게 큰 호응을 일으키는 드라마들의 트렌드는 솔직함인 것 같다. 캐릭터가 솔직하든, 솔직하게 현실을 풍자하는 메시지를 필터링 없이 던지든 사회나 인물에 대해 솔직한 시각을 가진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것 같다. 이전 세대들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현저히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이전 세대들이 좋아했던 클리셰가 가득한 막장 드라마 플롯 말고, 조금 발칙하더라도, 예의없더라도 솔직한 현실 풍자가 담긴 드라마 플롯과 대사들이 있는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재벌 2세의 어머니와 여주인공이 만날 때에는 물잔이나 돈봉투가 나오길 기다리게 되는 플롯 말고, 성희롱을 시전하는 상사를 기어코 패고 마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통쾌한 반전을 선사한다. 그렇게 주체적으로, 마이웨이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혹시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마이웨이로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뒤늦게라도 입소문이 나서 넷플릭스, 왓챠 등의 동영상 시청 플랫폼에서 큰 인기를 구가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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