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 '아, 클리셰 로맨스 영화 하나 또 나왔네.' 했었다. 여주인공이 동양인인 경우는 신선했지만 내가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웬걸 이 영화가 인기를 끌더라. 그래서 한 번 보았다. 얼마나 재밌길래. 코웃음 치면서 보기 시작했던 영화에서 다른 것들이 스쳐 보이기 시작했다. 보다보니, 이 영화는 로맨스의 탈을 쓴 아웃사이더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1. 한국인이 바라본 영화 속 주인공.
이민자들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 이민자들 마저 백인이기 때문에 백인이 아닌 인종은 자연스럽게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리는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 혼혈 가정의 라라 진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의미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어서일까 남다르게 다가왔다. 라라 진의 대사 중에서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라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이 대사를 통해 라라 진은 최소한의 인간관계만을 유지하면서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영화 상에서는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라라 진의 모습을 단순히 엄마의 죽음 때문인 것처럼 단정지어버렸지만, 미국 사회에서 라라 진이 처한 위치를 고려하면, 라라 진의 폐쇄적인 성향은 그녀의 인종으로부터 비롯된 사회적인 시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을 것이라고 본다. 혹자는 너무 과장된 관점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장되어 보일 수 있는 관점은 단지 나도 라라 진과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인종 집단에 속하지 못한 비주류 인종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화 속 라라 진은 엄마와 다른 가족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2.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
더 많은 사람을 사귈수록, 내 곁을 떠나가는 사람도 많아질 것 아니야.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중에서
안그래도 사회적으로 자신을 달리 바라보는 시선에 낯선 감정을 느끼던 상황 속 엄마가 떠나버린 설정은 그녀가 연애공포 증상을 느끼기에 충분한 알리바이가 되어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등장한 피터는 그녀의 아픔을 공감해 주었다. 그 공감의 바탕에는 그도 애정을 쏟았던 존재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이 있었다. 결국 사랑이란, 상대와 내가 아픔이든, 기쁨이든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안정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외향적인 피터와 내향적인 라라 진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족과 관련한 아픔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제공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을 쏟는 사람이 많을수록 떠나가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라는 그녀의 생각에 깊이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로맨스가 주요 장르인데, 왜 공감이 되었는지 고민해 보니, 라라 진의 폐쇄적인 성격에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 친구를 사귀지 않는 그녀의 이유인 엄마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도 최소한 나에게는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유였다. 로맨스 영화 속 여주인공에게서 나의 찌질한 모습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와 나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을 쏟는 사람이 많을수록 떠나가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라는 그녀의 생각에 깊이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로맨스가 주요 장르인데, 왜 공감이 되었는지 고민해 보니, 라라 진의 폐쇄적인 성격에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 친구를 사귀지 않는 그녀의 이유인 엄마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것도 최소한 나에게는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유였다. 로맨스 영화 속 여주인공에게서 나의 찌질한 모습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와 나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국 이 영화는 라라 진의 성장 스토리이자 로맨스가 언제나 그러하듯 나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나의 장점을 바라봐줄 단 한 사람이 등장할 것만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면서 라라 진의 아픔을 이해하는 스윗한 남자 주인공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다만, 이 영화 안에는 인종에 대한 외모 지적 등과 같은 직접적인 언급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동양인들은 잘 나서지 않는다는 편견이 적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라 진과 같은 소심한 캐릭터가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 주인공이 동양인이기 때문에 미국 영화에도 인종의 다양성을 존중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동양 세계,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서양인들과 동등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원작 소설의 작가가 한국인 교포이던데, 작가가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라라 진에게 투영된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떤 요소에서 비롯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면, 그에 따라 공감이라는 감정이 생겨나게 됨에 따라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사랑도 원수와의 싸움과 마찬가지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