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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Jan 20. 2021

걸그룹 있지가 있기 전에 헬렌 레디가 있었다.

영화 아이엠우먼 리뷰(싸우자고 쓴 글 아닙니다)

호주 출신 불법체류자, 헬렌 레디는 미국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을 위해 그저 버티는 중이다. 성공을 위해 딸까지 데려온 미국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자신의 매니저가 되어주겠다는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이 남자는 헬렌의 성공을 도와주기는 커녕 본인의 일에만 열중이다. 과연 헬렌은 이 남자의 도움을 받아 과연 데뷔라도 할 수 있을까?

1. 2020년대 한국 여자가수 음악에도 헬렌 레디의 정신은 살아있다.


요새 인기있는 여자 아이돌 음악에는 걸크러쉬 무드가 아주 진득하게 배어있다. 예를 들면, 인기 여자 걸그룹인 있지의 icy의 가사를 살펴보면,


차갑게 보여도 어떡해, 쿨한 나니까, 눈치 볼 마음 없어,

너의 틀에 날 맞출 맘은 없어, 다들 참 말이 많아, 하지만 난 괜찮아, 계속 블라블라,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계속 걸어갈거야


라는 주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는 가사도 있고, 같은 가수의 wannabe라는 노래의 가사만 봐도 더 노골적으로 주체성을 외친다.


잔소리는 stop it 알아서 할게,

내가 뭐가 되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좀

평범하게 살든 말든 내버려둘래

어차피 내가 살아, 내 인생 내 거니까.

차라리 이기적일래,

말해버릴지도 몰라, 너나 잘하라고

누가 뭐라해도 난 나야,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


등의 가사를 보자니, 헬렌 레디의 노래는 지금 이런 노래들과 비교해봐도 그리 공격적이지도 않은데, 70년대의 미국은 얼마나 보수적이었던 걸까. 그 때, 헬렌의 노래를 여자 가수가 노래하기에는 너무 공격적이라는 레코드사 사장의 반대가 왜 나에겐 남자가 듣기에는 기분 나쁜 가사라는 뜻으로 이해가 되었던 걸까. 한 여자 가수가 노래를 발표하는 데까지 남자의 비유를 상하게 하는 노래는 발매조차도 힘들었던 그 시대에 소외받던 여자, 그것도 결혼한 여자들을 타겟으로 삼아 그들에게 공감이 되는 가사로 어필이 되었던 헬렌의 존재는 가히 상징적이었다고 본다. 그 때, 헬렌의 노래를 여자가 부르기엔 가사가 공격적이라고 비난했던 레코드 사의 사장이 지금 현재 한국에서 걸크러쉬 열풍 아래 발매되고 있는 여자 가수들의 가사를 보면, 얼마나 뒷목을 잡을 지가 궁금하다. 솔직히 그 모습을 조금은 보고 싶다.

2. 여자가 강한 것은 남자의 거세와는 관련이 없다.


여자가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자신의 강함을 어필하는 것이 왜 그 시대의 남자들의 눈에는 거슬려보였던 걸까. 영화에서 한 기자가 헬렌의 남편을 상대로 헬렌의 성공이 남편의 기를 죽이기라도 한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라는 듯이 몰아붙이는 장면은 상당히 영화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기자의 질문은 마치 헬렌의 성공이 남편을 정신적으로 거세라도 한다는 듯이 물어본 것이었고, 그 질문의 이면에는 헬렌의 성공에 대해서 탐탁치 않아하는, 여자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대단할 것이 없다는 성별적 차별이 70년대에는 분명히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대 미국은 여성의 참정권 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여자가 조금만 말을 세게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을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누군가는 이 영화는 여성의 관점에서 '여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요'라고 징징대기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인터넷 댓글창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감정적으로 싸워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누군가가 단지 "여자들은 차별을 당하고 있는 존재이고, 그 차별은 남자 때문이다" 라고 생각해 영화의 메시지가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남자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그저 성별이 여자일 뿐인 한 인간의 성공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영화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이 여자의 성별을 가진 인간의 성공을 위해 그녀의 남편을 포함해 수많은 남자들이 이 여자에게 협력했는데, 일부 남자들의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여자의 성공을 논할 때, 남자의 기나 죽일거라는 평가는 이 여자에게 협력한 남자들의 공을 무시한 것이 된다.

그런데 2020년대에도 여자들은 여전히 차별을 당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한 가지 위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70년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대 속에서 살아간 여성과 현재 2020년대의 여성이 입장이 같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논리적인 지적이라고 우선 박수 쳐주고 싶다. 그렇다. 그 때의 여성과 지금 시대의 여성은 확실히 삶이 다르긴 하다. 그 때의 여성들은 남자들이 벌어다주는 돈을 가지고 알뜰살뜰히 살림만 잘 하면 되는 시대에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니 사회생활하는 남자들로부터 은근히 무시받기도 했지만 지금 여성들은 직업적인 사회생활은 필수적으로 해야 하고, 최소한 표면상으로라도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우들을 받고 살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들은 말하는 표현에 있어서 기세보여서는 안되는 분위기가 있다. 여자들이 자신의 불만을 정확하고, 명료한 톤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여자들은 기센 여자라고 칭해지며, 시집도 제대로 못갈 거라는 둥의 말을 듣는 경우가 아직 근절되지 않은 것을 보면, 헬렌이 살았던 시대보다는 여성들의 대우가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헬렌이 가사가 조금이라도 센 노래를 내려면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처럼 여전히 강하게 주당하는 여자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는 70년대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는 이 영화가 2020년대를 살아가는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아직 효과가 있을 듯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조금 내용상 답답한 부분도 있고, 루즈해지는 내용도 있지만 노래빨로 끝까지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인터넷 상에서 싸움이 될만한 관점이 조금은 보여서 이 영화 인터넷에서 호불호가 어마무시하게 갈리겠다 싶었지만 나는 여자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호감이었다. 우선, 그 시대에 이런 노래를 발매했었던 헬렌 레디의 강직함에 박수를 치고 싶었고, 요새 우리나라 음악에서 걸크러쉬라는 개념이 나온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사실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개념이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원조 걸크러쉬 팝가수라고 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 영화는 여자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자들을 향해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헬렌 레디라는 여성의 성공은 여성, 남성 가를 필요없이 두 성별들이 협력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고, 감독의 의도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미국에서 살림만 하며, 기에 눌려 살고 있던 다른 여자들에게 활력을 선사해준 그 콜라보레이션의 선한 영향력을 모두가 잊지 말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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