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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Aug 24. 2021

가! 가란 말이야!!

이중 구속 메세지

"가! 가란 말이야!!!


   예전 한 티비 광고에서 정우성이 연인에게 낙엽을 던지며 외치던 말이다. 지오디 노래 ‘거짓말’에도 비슷한 가사가 있다. "잘 가 (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가지 말라는 마음을 잔뜩 담아 가라고 한다.


   이런 이중적인 메시지는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사이,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서도 오고 간다. 부부싸움 중에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라고 해서 나가면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 라며 화를 낸다. “자유롭게 의견 주세요.”라는 상사의 말에 편하게 의견을 냈다가 위, 아래도 모르는 건방진 부하로 찍히기도 한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라고 묻는 자식에게 “필요한 거 없다.” 하신다고 그냥 넘어가면 두고두고 서운해하실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였던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은 이런 이중 구속 메세지“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대화 패턴”이라고 말한다. 조현증(정신분열증) 환자들 주변에 이런 대화를 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애매한 메세지 속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편집증적인 사고를 갖고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을 모르더라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미칠 노릇인지. 나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전달받은 메세지를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이고 행동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는 상황 속에 대체 어쩌란 말인가 싶은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 끊임없이 긴장하게 된다.


   이런 대화법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그 문제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게 된다. 하지만, 내가 미치지 않으려면 상대가 ‘이중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애매하다 싶으면 직구를 날려야 한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은, “(어쩌고저쩌고)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재차 확인을 하고 진행해도 나중에 다른 말을 할 때면 정말이지 뒷목을 잡게 된다.


   메세지 속 숨은 뜻을 해독하기 위해 낭비했던 숱한 시간들이 떠오른다. 진심을 꽁꽁 숨겨둔 채 관계 맺는 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피로감을 주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과도한 솔직함은 무례함이 될 때가 있지만, 의도를 숨긴 대화는 사람을 혼미케 한다.


   오늘 오후,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다가 점점 화가 올라왔다. 표정과 몸짓, 목소리는 모두 화가 담겨 있었지만 “오늘 연습 잘했네”라고 말했다. 내 말과 상관없이 아이의 시무룩해하는 모습을 보니 아차 싶었다. 내 말과 비언어적인 표현이 일치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언심일치’를 꿈꾼다. 긍정적인 말만 한다고 좋은 사람은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 또한 무례하지 않게 언어화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진실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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