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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Aug 27. 2021

밤하늘에 수놓는 시간

자기 전 대화

자기 전 불을 다 끄고 누웠다. 두 아이의 목소리가 캄캄한 방 안을 따뜻하게 데운다. 침대에 등을 대고 누우면 당장이라도 깊은 잠에 빠질 것 같다가도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든다. 대뜸 딸이 슬프다며 울기 시작한다.


ㅡ엄마, 저 너무 슬퍼요


ㅡ무슨 일이야


ㅡ저 결혼하면 엄마랑 헤어져야 되잖아요. 나는 엄마랑 같이 살고 싶은데 엉엉


ㅡ하나야, 그런 걱정하지 마... 너 아직 여섯 살이야

ㅡ그래도 크면 결혼할 거란 말이에요. 그럼 엄마랑 헤어져야 하잖아요.

ㅡ결혼해도 엄마랑 가까이서 살면 되지.

ㅡ(훌쩍훌쩍) 네 엄마


   대화를 듣던 아들이 끼어든다.

ㅡ엄마, 저는 엄마랑 멀리 살 거예요. 가끔 놀러 오세요.

ㅡ어, 그래. 너는 정말 지혜로운 아들이구나.




   몸의 모든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이들은 자기 전에 마음을 푹 내려놓고 속 마음을 꺼내기 시작한다. 웃겼던 일, 울고 싶었지만 참았던 일, 고치고 싶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에 대해서, 삶과 죽음, 결혼과 출산에 대한 궁금함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내고 잠이 든다. 자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는 것처럼 하루를 지내며 쌓인 감정들을 털어내는 의식과도 같이 느껴진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천국은 어떤 곳인지,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아이들은 질문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깊고 많은 것들을 느끼며 알고 있다. 대화를 통해, 상상을 통해 어렴풋이 느꼈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날들도 오겠지.



   나는 아이들과 자기 전 나눈 대화를 종종 녹음해뒀었다. 엄마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어눌했던 말투에서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또박또박한 말투로 바뀌어가는 과정들이 담겨 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이 보인다.


   자기 전 대화가 아이들의 마음에 반짝이는 별들을 수놓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을 살아가다가 캄캄한 밤을 지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때, 숱하게 많은 밤 동안 우리가 나눈 대화들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구체적인 내용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어두운 밤도 밝게 비출 만한 따스함으로 기억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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