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귀가 있나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딸아이가 자기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수첩과 연필을 가져와서는 뭔가를 꾹꾹 눌러쓴다. 글씨는 맞게 쓰나 싶어 훈수를 두려 하자 “엄마, 보면 안 돼요.” 새침하게 말하고는 돌아 앉는다. 뭘 쓰는지 괜히 더 궁금해져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본다. 다 썼다고 가져왔지만 몇 글자를 빼고는 거의 못 알아보겠는 글자들이다. "읽어줄 수 있어?”라고 물으니 또박또박, 그러나 더듬더듬 읽어 준다.
ㅡ바람이 왜 부는 거예요?
ㅡ왜냐면 나무가 코가 간지러워서
ㅡ바다에는 왜 소용돌이가 치는 거예요?
ㅡ왜냐면 파도가 우는 거예요.
아이들을 키우며 소소한 기쁨들이 많지만 유독 잠시 더 머물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전해 듣는 순간이다. 하루는 딸이 잠에서 깨자마자 나를 흔들어 깨우고는 놀란 눈으로 말한다. “엄마, 새는 귀가 없어요!!” 잠결에 내가 봤던 수많은 새들이 떠올랐다. ‘어? 새 귀가 어딨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유튜브에 ‘새는 귀가 있나요’라고 검색하니 잘 정리되어 있는 영상이 나온다. 눈 옆에 털을 들추면 있단다.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뱀은 귀 뼈가 머리에 있고 달팽이는 귀가 없어서 천둥소리를 못 듣는다는 것, 어떤 개구리는 소리를 입으로 듣는다는 정보들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수영을 하다가는 갑자기 '물고기는 비가 오는 것을 알까요?’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질문을 듣다 보면 같은 시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 속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들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 렌즈를 빌려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리 낯선 곳에 가도 2주 정도가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새로울 것도 없고, 더 이상 낯설게 다가오는 것도 없다. 알만큼 안다는 진부한 생각이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의 렌즈는 꽤나 삶의 활력이 된다. 축적된 경험의 데이터가 없기에 모든 것이 그저 새롭고 신기하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얼마나 편견이 심해지는지 모른다. 잘 알지 못해도 질문하지 않는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매일이 그렇고 그런 보통의 날이 되어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의 렌즈를 통해 발견한다. 주변의 많은 것들이 말을 걸어올 때 잠시 멈춰 들어봐야겠다. 조금 더 다채롭고 입체적인 삶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