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등굣길에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발표 수업이 있다며 긴장을 한다. 준비한 만큼만 하면 된다고, 연습 많이 했으니까 잘할 거라고 안심을 시켜주고 있었다. 대화를 듣던 둘째가 "오빠,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하면 돼. 떨지 마" 오빠가 친구들 앞에서 기도하는 건 떨지 않고 씩씩하게 했던 게 생각났던 모양이다.
학교 앞에 도착했는데 둘째가 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우두커니 멈춰 선다. 오빠에게 조언을 해주던 의젓한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무섭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입학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정문을 통과하기가 여전히 어려운가 보다. 언어도 원활하지 않은 학교에서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세, 네 개 밖에 되지 않는 계단이 가파른 오르막길이라도 되는 듯 한 칸을 올라서는데 한참이 걸린다. 학교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둘째를 어르고 달래고 있었다. '잘 다녀와라' 뒷 쪽에서 한 남자분의 한국말이 들리길래 돌아보니 열 살쯤 되는 여자 아이가 있다. 둘째를 달래고 있는 나를 지나쳐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한달음에 계단을 올라 선 아이의 검정 구두가 보인다. 앞뒤로 살짝씩 왔다 갔다 하며 주춤거리는 발을 보니 아이의 망설임이 느껴진다. 이내,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니가 같이 가줄까?” 하며 손을 내민다. 선생님의 커다란 손보다 아이의 작은 손이 더 든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인 나는 함께 들어가 줄 수 없는 정문을 한국인 언니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모습을 한참 지켜봤다. 어른들도 대놓고 울지 않을 뿐이지 비슷한 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아이들의 세계를 엿보며 그 순간 필요한 건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같이 가줄까?"라는 작은 한 마디에도 무거운 발걸음이 떼지는 거구나 싶었다.
비눗방울이 아무리 커 보여도 '톡'하고 건드리면 금방 터져 버리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불안도 실체 없이 크게 보일 때가 많은 듯하다. 그러나, 따뜻한 말 한마디와 마음 담긴 사소한 행동 하나에 불안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질 때가 있다. 내 곁에도 한 계단 오르기가 버거워 멈춰 선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먼저 다가가는 것이 어색해서 주춤할 때도 있다. 나도 그 아이처럼 용기 내어 손을 내밀어봐야겠다. “같이 가줄까?”라는 아이의 작은 속삭임이 어떤 대단한 책의 구절이나 위대한 스승의 말보다도 마음의 위로를 가져다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