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불을 다 끄고 나면 낮에는 하기 힘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도 잘 털어놓게 되는 듯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더 선명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목소리의 떨림이나, 감정의 온도 같은 것들 말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오늘 하루 울고 싶은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묻곤 한다. 그렇다고 할 때도, 아니라고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하는 날에는 몸도, 마음도 살짝 긴장이 된다.
그날은 그런 질문을 던진 날이 아니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추웠는지 이불을 꼭 덮고는 아들이 말문을 연다. '짝꿍이 저를 때렸어요.' 가슴이 철렁했지만 놀란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덤덤히 대화를 이어갔다. 아들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수업을 받다 보니, 읽고 쓰는 게 부족하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짝이 되어 친구에게 도움을 받는 상황이었다. 잘 도와주긴 하지만, 가끔씩 손등을 세게 때리거나, 정강이를 찰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버럭 '너도 같이 때리지'라고 내뱉어 버렸다. '손을 들고 선생님한테 말하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슬픔인지, 아픔인지 모르겠는 여러 감정이 뒤엉켜 화가 났다. '저는 친구를 때리기 싫단 말이에요' 집에서는 동생 때리지 말라고 해놓고 왜 친구는 때리라고 하냐며 울기 시작한다. 순간, 마음속이 멍해졌다.
도와주는 친구가 있어 감사하다며 밤마다 짝꿍을 위해 기도했던 여러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동생과 싸울 때마다 때리는 건 절대 안 된다고 가르쳤던 말들이 떠올랐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이번에는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선생님께 말해 달라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아들은 대화를 마치고도 마음 상자가 열렸는지 작년에 있었던 일들까지도 꺼내놓고 한참을 울다 잠이 들었다. 나무가 자랄 때 비, 바람을 맞고 자라는 것처럼, 아이가 자랄 때도 여러 일들을 겪으며 커간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차라리 그 비, 바람을 내가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어릴 때는 대신해줄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대신해주기에 몸이 피곤한 일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저 지켜봐야 하는 일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몸이 편해졌는데도 이상하게 편하지가 않다.
며칠 전에 드라마의 대사 중에 ‘심장에서 시냇물이 흐른다’는 표현을 듣고 무슨 느낌인지 상상이 되질 않아 한참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 심장에 시냇물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심장이 저리는 듯한 느낌.
아이가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심장에 얼마나 많은 시냇물이 흐를까 싶다. 그 시냇물이 모이고 모여 엄마의 마음이 바다같이 넓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것도 다 품어주던 엄마의 그 너른 품은 자식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던 여러 날들이 모여 생겨난 것은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