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란초 Jan 08. 2022

새들은 좋겠다

홍콩, 락다운 어게인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오래인데, 왜 아이들은 여전히 성탄절 방학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방학 마지막 주에 접어든 시점에 학교가 다시 닫힐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홍콩은 철저한 규제와 강도 높은 격리로 작년 하반기에는 제법 불편함 없는 일상을 보내왔다. 그런데 다시 코로나19와 오미크론 지역감염이 시작되면서 2주간 하늘길이 막히고 공공장소 모임과 식당 운영에도 제한이 생겼다. 


   천만다행히 학교 문은 닫히지 않았다. 2년간 학교가 열렸다 닫혔다를 수차례 반복하며 학교는 학생들이 아닌, 부모를 위해 존재하는 곳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가상현실이 발달하더라도 부모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학교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 관계 속에서도 적당한 ‘거리두기’는 꼭 필요한가 보다.


   좁은 집에서 움직임이 많은 아이들과 복닥복닥 거리는 것보다 나가 노는 게 편해서 밖에 나가자고 했다. 스케이트를 타겠다는 아이들에게 양말을 신기고, 스케이트를 신기고, 보호대와 헬맷을 두르니 몇십 분이 금방 흘렀다.


   어렵사리 밖으로 나와 놀이터를 향했다. 그런데, 놀이터가 닫혀 있다. ‘맞다.' 정부 발표 났던 게 오늘부터 적용되는 것이었지. “얘들아, 코로나 때문에 놀이터가 닫혔네.” 아이들이 망연자실해서 보도블록에 걸터앉는다. 


   아이들의 눈빛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놀이터를 응시하던 아들이 한마디를 내뱉는다. “새들은 좋겠다.” 그 말을 듣고 딸아이도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거든다. “새들은 왜 놀이터에 들어갈 수 있는 건데요.”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나도 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새가 되고 싶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을 나눈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은 소유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유연함, 자유로움 같은 것들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갓난아기의 발바닥의 보드라움이 그러하고, 어렵지 않게 몸을 접으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러하지 않은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 투성이라 아무런 겁이 없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살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가.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우리가 얼마나 육체에 갇힌 존재인지를 아이들이 너무 이른 나이에 알아버린 것만 같아 씁쓸했다. 어른들의 입모양을 보고 따라 하며 말을 배워야 하는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입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고,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놀이터는 차갑고 딱딱한 펜스로 막혀 있다. 아이들이 맞이하는 현실이 너무 차갑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공기처럼 당연해서 소중한지 모르고 살았던 것들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새가 되고 싶다.’는 어린아이의 간절함 속에서 인간이 가진 ‘자유’에 대한 갈망을 엿본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어려운 시기인 것은 분명 하나, 덮어 놓고 살았던 여러 진실들이 들춰지는 신비를 누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심장에서 시냇물이 흐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