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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e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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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Aug 03. 2021

이기적 이타심

세상을 바꾸는 힘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분리수거나 재활용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정장 차림에 한 손에는 가방을, 한 손에는 ‘음쓰’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출근하는 남편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쓰레기봉투를 살포시 잘 묶어 내다 버려도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퇴짜를 맞기도 한다. 오며 가며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봉투를 볼 때마다 불안이 엄습하기도 한다.


   지금은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나라에 살다 보니 집안일이 확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가끔 길에 재활용할 수 있는 통들이 세워져 있긴 하지만 별 의미는 없다. 아파트 각 층마다 쓰레기를 버리는 입구는 하나뿐이다. 집에서 나온 모든 물건과 음식물들을 한 데 모아 쓰레기통에 넣으면 한참 있다가 ‘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뭘 버렸는지에 따라 떨어지는 소리는 매번 다르다.


   한국 사람들끼리 모이면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며 토로할 때가 있다. 여느 날과 같이 쓰레기를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리나라의 철저한 분리수거 시스템에 박수를 쳤다가도, 미국 같은 대륙에서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회의적이 되기도 한다.


   한창 대화 중에 한 친구는 건전지나 잉크 카트리지를 그냥 버리는 건 정말 못하겠단다. 그러면서 어느 건물, 지하 몇 층, 어느 섹션에 가야 건전지 수거함이 있는지 세, 네 곳을 읊는다. 차에 늘 폐건전지를 갖고 다니다가 그 건물에 갈 일이 있으면 버린다는 것이다. 친구의 남편이 쓰레기 좀 갖고 다니지 말라고 한단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하자 그래야 자기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행동 하나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별나게 살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의 비아냥을 감수해야 한다. 나 한 사람 노력한다고 바뀌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선한 일을 하는 것일까?


   바로 '이기적 이타심' 때문이다. 이기적인 것과 이타심은 상충하는 표현처럼 들린다. 나의 이익을 챙긴다는 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챙겨주려면 내가 손해를 보는 일 같이 느껴진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나를 위한 이타심도 분명 존재한다.


   유시민 씨는 민주화 운동을 한 것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을 못 바꾼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 그 일을 했다.” 세상의 불공정한 일들에 대해서 모른 척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는 것이다. 평생을 비천함과 비겁함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아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세상은 '이기적 이타심'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변화되어 온 것은 아닐까 싶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대의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 한 자락 편하기 위해 했던 선한 행동들로 더 나은 세상이 되기도 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을 알면서도 내가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의 부담을 느끼는 일이 있는가? 용기 내 그 일을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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